“‘시에그린’이라고 하면 시에 그림을 그린다는 의미도 있고, ‘시에’가 사정(事情)을 뜻하는 전남 방언이라 서로의 사정을 잘 살피자는 뜻도 있어요. 보듬어 주는 게 예술이지 않겠어요?”
지난 7일 이지엽 시인(경기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은 서울 중국 한국일보 본사에 큰 캐리어를 들고 나타났다. 인터뷰 직후 ‘시에그린 한국시화박물관’이 있는 전남 진도로 내려가야 했기 때문이다. 이 시인은 최근 사비로 진도에 있던 폐교를 매입, 평생 수집한 작품들을 전시할 박물관을 차린 터였다.
시인이면서 개인전을 수차례 연 화가이기도 한 그는 문학과 미술의 교류에 큰 관심이 있었다. 2007년 한국 현대시의 기점인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발표된 지 100년이 되는 해를 맞아 미술과 문학의 만남을 다룬 시화전과, 2019년 태백산맥 등 한국의 대표 문학작품을 그림으로 그려낸 ‘한국의 문학, 그림으로 그리다’ 전시 등을 기획한 이유다. 이 시인은 “전시를 기획하며 관련 작품을 조금씩 수집한 게 1,000여 점에 이르렀다”며 “관련 전시들이 반응이 좋았는데, 내가 가진 것들도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계속 해왔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시인은 왜 고향(전남 해남)도 아닌 진도에 박물관을 짓게 된 걸까. “소설을 그림으로 그려낸 전시를 보고 간 진도군수가 진도에서도 이런 걸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저를 적극적으로 설득했어요. 마침 공간으로 활용할 만한 폐교도 있었지요.” 그 결과 이 시인은 작년 10월 진도군이 가진 폐교(석교초 죽림분교) 부지를 사들였고 거기에 박물관을 짓기로 했다. 박물관은 리모델링을 거쳐 오는 18일 개관을 앞두고 있다.
박물관에 오면 무료로 다양한 시와 그림을 함께 볼 수 있다. 한국화가인 고 민경갑 화백이 그린 산 그림에 원로 여류시인 김남조 선생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쓴 시 작품이 대표적이다. 화가이자 서예가인 박종회가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그림으로 형상화하고 시를 쓴 작품, 소설가 박완서의 ‘엄마의 말뚝’을 원로 화가 박남이 형상화한 작품 등이 있다.
2층짜리 학교 건물에는 시화박물관 외에도 여귀산미술관과 진도수석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미술관에서는 진도가 낳은 뛰어난 조각가 양두환을 재조명하는 전시를 감상할 수 있다. 이 시인은 “나무조각을 하셨는데 33세에 요절해 빛을 제대로 발하지 못한 분”이라며 “박물관에 오면 양두환 조각가의 정교함에 감탄할 수 있는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고 말했다. 수석박물관에서는 수석 총 1,100점과 타이슬링 등 기념품 3,000여 점을 볼 수 있다.
정년을 2년 남짓 앞두고 있는 이 시인의 남은 바람은 뭘까. “‘나만의 수석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과 인문학 강좌를 이곳에서 할 계획이에요. 죽어 있는 박물관이 아닌, 대중들이 자주 찾으며 인문학적 소양을 쌓을 수 있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