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 원하는 곳에 필요한 만큼 "학생회장이 정치인보다 낫네"

입력
2021.06.18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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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교육청 학생회장 공약이행비 지원
교실에 옷걸이·신입생 학교 설명 행사도 척척
공약 우선순위 정하고 예산 편성과 집행까지
"임시방편 공약 줄고 장기 공약 추진도 가능"

'공(空)약이 아닌 공(公)약이 중요하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표현이지만, 대부분 공염불에 그친다.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 지방 선거에서 내세우는 공약은 천문학적 예산이 드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재원 마련 방법이나 실현 가능성에 대한 고려 없이 제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직업 정치인은 아니지만 공약 이행 측면에서 정치인보다 나은 모습을 보이는 선출직이 있다. 인천지역 중·고교 학생자치회가 주인공들이다. 이들이 유권자인 학생들과의 약속을 잘 지키는 이유는 인천시교육청에서 '학생회장 공약이행비'를 지원받기에 가능했다.

올해 3월 인천논현고 3학년 교실에는 옷걸이가 설치됐다. 마땅히 둘 곳이 없어 '처치곤란'이던 교실 내 겉옷 등을 정리하려는 용도로 쓰기 위함이다. 옷걸이는 학생회가 공약이행비 일부를 써서 마련됐다. 화장실 한 쪽에 보관 중인 위생용품, 누구나 필요할 때마다 빌려 쓸 수 있는 독서대, 급할 때 사용할 수 있는 머리끈도 공약이행비로 구입했다.

강화여고 학생회는 많은 학생들에게 학생회 활동 내용을 공유하고 참여 기획를 제공하기 위해 메신저 프로그램에 계정을 개설하는 일에 공약이행비를 썼다. 메신저 프로그램은 학생들에게 개별 메시지를 보낼 수 있어 공지사항을 매번 확인해야 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지에 비해 접근성이 높다. 학생회는 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등교 수업이 제한돼 학교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신입생을 위해서도 돈을 썼다. 학교 설명회 행사와 청각장애인을 위한 '립뷰 마스크(투명창이 있어 입 모양이 보이는 마스크)' 후원 캠페인이 대표적이다.

인천신현고 학생회는 회장 선거 입후보자가 직접 부담해온 선거 포스터 제작비를 공약이행비로 지원했다. 선거 공공성을 강화하고, 후보자 공약들을 쉽게 알리기 위한 취지다. 교장과 교감, 부장교사와 협의해 학교 예산을 일부 보태 바퀴 달린 분리수거함과 화이트보드도 학급마다 설치했다. 모두 학생들이 원하는 물품들이었다.

인천시교육청은 학생이 학생 주권시대에 맞춰 자치활동을 확대하기 위해 공약이행비를 2018년부터 지원하고 있다. 첫 해엔 고등학교에 80만 원씩 주던 것을 이듬해엔 중학교까지 확대했고, 지난해에는 공약이행비를 200만 원으로 늘렸다. 올해는 대상을 중·고교 외에 특수학교 등으로까지 확대했다. 전교생 대상 설문조사 등을 통해 공약 우선순위를 정한 뒤, 예산 편성과 집행 계획을 세우기까지 절차가 까다롭지만 학생들 반응은 대체로 나쁘지 않았다.

황현정(3학년) 인천논현고 학생회장은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임시방편에 그칠 수밖에 없는 공약들이 적지 않다"며 "이행비가 지원되면서 문제 해결이 가능해졌고, 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공약도 마련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공약이행비 지원이 후배들에게도 이어지길 바란다"며 "다만 현재는 온라인에서만 이행비를 사용할 수 있는데, 오프라인에서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인천시교육청 관계자는 "공약이행비 지원은 청소년 정책 토론회에서 나온 학생들 의견을 적극 수용해 실시되는 전국 유일의 정책"이라며 "앞으로도 이행비 지원을 유지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환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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