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족들이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사건을 맡은 재판부가 법리적 판단을 넘어, 주관적 견해를 과도하게 판결문에 적시해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부장 김양호)는 7일 송모씨 등 85명이 일본제철 등 일본기업 16곳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를 각하했다. 재판부는 “1965년 한일협정에 따라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청구권’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특히 피해자 청구권을 인정한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대해 “식민지배와 징용의 불법성을 전제로 한, 국내법적인 해석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 “대한민국이 (1965년) 한일협정으로 얻은 외화는 이른바 ‘한강의 기적’이라고 평가되는 세계 경제사에 기록되는 눈부신 경제 성장에 큰 기여를 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는 피해자 측이 “한일협정으로 타결된 3억 달러는 과소해, 청구권이 포함됐다고 볼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 반박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일본 정부는 한일협정(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 제공)으로 모든 배상 의무가 종결됐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재판부는 원고 승소 판결이 확정돼 강제징용 배상 문제가 국제 분쟁화될 경우 한미동맹이 악화하고 국가 위신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판결문에 담았다. 재판부는 피해자들 손을 들어준 판결이 유엔국제사법재판소(ICJ)로 갔다가 패소할 경우 “이제 막 세계 10강에 들어선 문명국으로서의 대한민국 위신은 바닥으로 추락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독도 문제’도 언급됐다. 재판부는 “일본과의 사이에 ‘강제징용 사안’ 외에도 ‘대한민국 영토 중 한 도서지역에 관한 영유권 주장 사안’ ‘위안부 사안’이 있는 바, 세 사안 모두 또는 일부가 국제재판에 회부되면 대한민국은 승소해도 얻는 게 없고, 패소해도 국격에 치명적 손상을 입을 것이 명백하다”고 밝혔다.
이처럼 판결문에 재판부 견해가 구체적으로 담긴 것을 두고 법조계 안팎에선 의아함을 넘어 부적절하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강제동원 사건 피해자 대리를 맡은 임재성 변호사는 “대법 전원합의체 판례에 반하는 판결이라 좀 더 탄탄한 논거가 필요한데, 정작 법리는 취약하고 ‘(피해자 권리를 인정하면) 나라가 위태롭다’는 식의 결론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한일 문제에 정통한 법조인들도 “판사는 법적 판단만 하면 되는데, 언제부터 판사들이 그렇게 정치·외교적 식견이 넓어졌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