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은 7일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족들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각하하면서 "국제법을 위반하는 방식으로 국내법을 해석하고 적용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가 인용될 경우 초래될 외교적 역효과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도 내놨다.
재판부는 '비엔나협약'과 '금반언(禁反言) 원칙'을 각하 결정의 주된 근거로 제시했다. 재판부는 “강제징용 손해배상 소송은 국제법과 국내법이란 두 규범이 교차하므로, 둘 사이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특히 "국내 법원이 국제법을 다룰 때는 (국내 사회와는 성격이 다른) 국제 사회를 규율하는 법체계로서 그에 합당한 해석과 처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조약을 이행하지 않은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국내법 규정을 원용해선 안 된다”고 규정한 비엔나 협약 27조를 거론했다. 자국에서 선고한 판결로 조약(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이행하지 못하게 되면, 국제질서 혼란을 일으키고 국제평화를 위협하게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2018년 일본 식민지배와 일본 기업의 강제징용을 불법행위로 판단해 위자료 청구권을 인정한 것과는 정반대 해석이다.
재판부는 해석이 엇갈리는 것에 대해 대법원 판단이 잘못됐다고 봤다. 재판부는 "대법원이 판단한 식민지배와 징용의 불법성은 유감스럽게도 모두 국내법적 해석"이라고 명시했다. 대법원이 국내 최고재판소라고 해도, 대법원 판결이 한일청구권협정에 영향을 줘선 안 된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각하 결정을 내리면서 ‘국가가 특정 발언이나 행위를 한 경우 나중에 그와 모순되고 배치되는 발언과 행위를 할 수 없다’는 금반언 원칙도 언급했다. 재판부는 “한국 정부가 청구권협정 체결 뒤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해 온 점을 고려하면, 이에 배치되는 발언 및 행위는 국제법상 금반언 원칙에 위배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피해자들 청구를 인용해 강제집행까지 마치면 국제적으로 역효과가 생길 수 있고, 그럴 경우 국가의 안전보장과 질서 유지라는 헌법상 대원칙을 침해하는 권리 남용에 해당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날 각하 결정을 내린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부장 김양호)는 지난 3월 일본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관련된 후속 결정에서도 유사한 판단을 했다. 재판부는 당시 “비엔나 협약 27조와 금반언 원칙을 위반해선 안 된다”면서 일본으로부터 소송비용을 추심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법조계 일각에선 국제법을 근거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부정한 재판부를 비판하기도 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이날 논평을 통해 “2018년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국내법 규정을 원용해 청구권협정의 불이행을 정당화한 게 아니다”라며 “비엔나협약 27조는 전원합의체 판결과 의견을 달리하면서 제시할 만한 적절한 국제법 근거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