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이 상시화ㆍ장기화하면서 한국과 일본 국민 10명 중 6명은 자국이 미국의 대중(對中) 압력에 보조를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주변국에 노골적으로 ‘줄서기’를 강요하는 두 강대국의 패권 다툼 속에 한일 모두 안보를 주축으로 한 전통적 동맹 관계에 힘을 싣는 모습이다. 한국인들의 중국에 대한 경계심 역시 전통적으로 일본인에 비해 느슨했지만 올해는 한층 냉랭해졌다.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부터 수위를 높이던 미중 갈등은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신(新)냉전’을 연상케 할 만큼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국민 63.9%는 ‘미국의 대중 압박에 한국이 동조해야 한다’고 답했다. 문재인 정부는 양국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 기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국민 다수는 미국에 우선 순위를 둔 셈이다.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 영유권, 동중국해 군사 활동 강화를 둘러싸고 중국과 대립 각을 세우는 일본 역시 59%가 미국의 대중 압력 강화에 호응해야 한다고 봤다.
미중 갈등은 한일 관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국인 68.4%, 일본인 68%는 미국이 의도하는 중국ㆍ북한 대응을 위해 한일 관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일본의 역사 왜곡 논란, 일본군 위안부ㆍ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등을 놓고 양국 관계가 어느 때보다 나쁘지만 중국ㆍ북한 이슈에 대해선 한미일 3각 동맹이 중요하다는 판단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을 향한 인식은 양국 모두 부정적으로 크게 기울었다. 한국인 57.3%는 한중 관계가 ‘나쁘다’고 했고, 36%만 ‘좋다’고 응답했다. 지난해 나쁘다는 응답이 43.4%로 절반에 못미친 점을 감안하면 1년 새 부정적 시각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박강서 한국리서치 여론1본부 차장은 “김치, 한복 등 원조논쟁을 두고 감정의 골이 깊어진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원 논란이 불거진 것도 영향을 줬다”고 설명했다. 일본도 중일 관계가 나쁘다는 응답이 78%로 압도적이었다. 지난해보다 6%포인트 오른 수치다.
그러나 경제 의존도가 높은 중국을 마냥 외면하긴 어려운 게 현실이다. 향후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를 강화 또는 약화해야 할 지 여부를 두고 한국인 42%는 ‘강화하는 쪽이 좋다’고 답했다. ‘약화시키는 쪽이 좋다(21.2%)’는 비율보다 두 배나 높다. 반면 상대적으로 중국 시장 의존도가 높지 않은 일본은 ‘지금 이대로가 좋다’는 응답이 절반 가량(48%)을 차지했다.
북한 비핵화 방법론에 관해선 한국 내에서 강경 목소리가 많아졌다. 북한 핵ㆍ미사일 개발 포기를 위해 대화와 압박 중 무엇을 중시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한국인 42%는 대화를, 32.9%는 경제 제재 등 압박을 꼽았다. 1년 전 조사에서 대화 중시(47.5%)가 압박 중시(24.4%)를 압도한 사실에 비춰볼 때 강경 여론이 높아진 것이다. 일본은 작년과 비교해 큰 차이가 없었다. 지난해에는 대화ㆍ압박 의견이 각각 41%, 45%였지만 올해는 대화 중시는 같은 비율을 유지했고, 압박 중시 의견이 2%포인트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