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수정(29)씨 가족은 지난해 8월 지인으로부터 입양한 몰티즈 심바(1세)가 있어 '코로나 블루'(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불안과 우울증)를 견딜 수 있었다. 코로나19 여파로 사업을 하는 아버지의 일거리가 줄어들고 다른 가족 역시 수입에 영향을 받았지만 심바가 활력소가 됐다. 김씨는 "심바와의 산책을 기회로 외출도 하고 운동도 하면서 규칙적인 생활이 가능해졌다"며 "심바를 데려올 때 아버지가 반대했지만 지금은 제일 많이 아끼신다"고 했다.
가족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한자리에 모이게 하는 것도 심바다. "가족끼리 의견이 맞지 않을 때도 있는데 심바가 엄청 애교를 부립니다. 아빠한테 한 번 갔다가 엄마한테 한 번 갔다가, 아기처럼 칭얼대기도 하는데 이런 모습에 가족들의 마음이 금세 누그러집니다."
#2. 윤민경(26)씨는 코로나19 이후 안 그래도 어렵던 취업이 더 힘들어졌음을 실감하고 있다. 취업 준비기간은 길어지고 외출하기도, 친구를 만나기도 힘들어 우울감과 불안감이 밀려올 때 함께한 존재가 반려견 '짱이'(15세)다. 그는 "일을 하지 못해 스스로 볼품없다 생각될 때 나만 바라보는 존재가 있음에 의욕이 생겼다"며 "짱이를 보고만 있어도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윤씨는 코로나19로 짱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늘면서 짱이의 소중함을 더 알게 됐다. "짱이를 키우기 위해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더 노력하게 됐습니다. 남은 시간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고요, 반려견뿐 아니라 많은 동물을 보호하고 지켜내는 것도 인간으로서의 책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많은 이들의 생활패턴이 바뀌고 있다. 비대면이 일상화되면서 코로나블루를 호소하는 이들도 많다. 보건복지부가 시행한 올해 1분기 '코로나19 국민 정신건강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울증 직전 단계인 '우울 위험군' 비율은 22.8%로, 2018년 3.8%보다 6배나 증가했다. 하지만 코로나블루 극복에 도움을 주는 고마운 존재가 있다. 바로 반려동물이다.
한국일보가 동물보호단체 동물자유연대와 최근 반려동물을 키우는 남녀 32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가운데 91.6%(323명 중 296명)가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게 코로나19 극복에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또 도움이 되는 정도에 대해 응답한 320명은 10점 만점 중 9점을 줬다.
이는 우리나라만의 경우는 아니다. 지난달 22일 미 일간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반려동물 서비스 사이트 로버닷컴이 반려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93%가 '팬데믹 반려동물'이 지난해에 정신적, 신체적 복지를 향상시켰고, 80% 이상은 재택근무를 더욱 즐겁게 해줬다고 답했다.
반려동물 챙겨주며 규칙적 생활 가능
본보 설문 결과 재택근무나 수업이 늘면서 자칫 생활패턴이 어그러질 수 있었는데 반려동물의 존재로 인해 규칙적인 생활이 가능했다는 의견이 많았다. 응답자 327명 가운데 87.5%(286명)가 코로나19 이후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었고, 326명 중 81.9%(267명)는 코로나19 이전보다 반려동물과의 친밀감이 커졌다고 답했다.
김세현(31)씨 부부는 프리랜서로 코로나19 이후 일이 줄면서 규칙적인 생활패턴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우울감과 무기력감이 생길 때쯤 반려견 뚱이(5세)의 밥을 챙기고 유일한 외부활동인 산책을 하며 규칙적인 생활패턴을 만들어 갔다. 김씨는 "뚱이와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하며 바깥 공기를 쐬고 뛰어놀며 우울감을 극복할 수 있었다"며 "사교성이 없던 뚱이도 산책을 하면서 자신감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뚱이 덕분에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알게 됐고, 일상 속 소소한 행복을 전보다 많이 느끼고 있다"며 "울적할 때 뚱이를 안고 있으면 편안해진다. 앞으로 살아갈 원동력이다"라고 덧붙였다.
김찬미(27)씨도 "반려견 콩이(6세) 덕분에 잠깐이라도 동네 한 바퀴 산책할 수 있었다"며 "스스로 생각할 때 게으른 편인데 콩이 밥도 챙겨주고 물도 갈아주면서 부지런한 생활을 하게 됐다"고 했다. 이어 "코로나19 이후 일이 줄어 우울하다가도 콩이의 애교 부리는 모습에 금세 기분이 풀린다"고 전했다.
한 응답자는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고, 코로나 상황이 얼마나 갈지 불투명한 상황 속에서 반려견이 있어 무기력하게 보내지 않을 수 있었다"며 "장난감으로 놀아주고, 밥을 주고 배변판을 치워주다보니 우울함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고 했다. 또 다른 응답자는 "반려견 배변 때문에라도 매일 햇볕을 쬐며 산책하다 보니 저절로 규칙적인 생활이 가능해졌고 운동도 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반려동물과 산책하고 노느라 코로나블루가 뭔지 느끼지 못한다", "산책을 시켜야 돼서 억지로 밖에 나가고, 햇빛을 쐬면서 우울증이 예방되는 거 같다", "퇴사 후 집에서만 지내고 있는데 아이(반려견)들과 함께하는 생활 루틴이 삶을 무너지지 않게 도와준다" 고 답했다.
정서적 교감으로 우울감 극복
엄지영(48)씨는 코로나19로 공연이 취소되면서 일 자체가 사라졌다. 노력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되새겼지만 우울감이 커져갔다. 이를 떨치게 해 준 건 반려견 호두(4, 5세 추정)다. 그는 "집순이인데 호두 덕분에 산책도 하고, 동네분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게 됐다"며 "방송인 박수홍씨가 '다홍이(반려묘)가 나를 구했다'는 얘기를 했다고 하던데 정말 그렇다. 매일 아침 엄마와 호두 얘기를 하면서 하루를 웃으며 시작한다"고 말했다.
전미현(28)씨도 코로나19 유행 후 반려견 퐁이(7세 추정)를 입양하면서 심리적 위로를 받았다. 전씨는 "재택근무를 하는 동안 사회적 교류가 단절됐고, 재택기간이 늘어나면서 일상생활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며 "퐁이 밥을 챙겨주고 산책을 하면서 둘 다 살아 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한 응답자는 "심리적으로 정상적이지 않은 일상을 지속하고 있었는데 항상 위로해주고 힘이 되어준 건 반려견이었다"라며 "때론 놀자고 조르고 간식을 줄 때면 꼬리를 흔들고 애교 부리는 모습에 일상에 다시 활기가 생겼다"고 전했다. 또 다른 응답자는 "코로나19 이후 어머니가 혼자 계시면서 우울증이 더 심해졌는데, 파양된다는 포메라니안 한 마리를 입양했다"며 "입양 후 집 안 분위기가 이 정도로 달라질 줄은 몰랐다. 어머니의 우울증도 많이 좋아졌다"고 소개했다.
이 외에 "사람들을 만나지 않게 되면서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강아지가 집에 있는 내내 나를 바라봐 주고 따라다니는 모습을 보며 우울감이 점차 사라졌다" "우울감과 답답한 심경에 가장 많이 위로되는 것이 반려동물과의 교감이다. 힘든 상황에 웃음을 주고 사랑을 표현해 줌으로써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등의 답변도 있었다.
반려동물 존재 자체가 위로, 반려동물도 행복
김민정(32)씨는 "재택근무가 시작되면서 무기력증이 심하고 우울감이 커져 힘든 날을 보냈는데 지난해 입양한 반려견 까미의 존재 자체가 위안이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더욱이 코로나와 함께 찾아온 임신은 큰 기쁨이었지만 동시에 불안감도 컸다"며 "까미가 없었으면 임신기간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면서 이전 두 번의 파양으로 불안증세를 보였던 까미의 심리 상태 역시 많아 나아졌다.
류효정(42)씨도 재택근무기간에 나나(7세)와 함께하면서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었다. 옆에 있는 나나를 쓰다듬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됐다는 것. 더욱이 류씨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면서 나나의 분리불안 증세도 호전됐다.
재택근무 끝나면 혼자 있을 반려동물 걱정
반려인들은 코로나19 와중에 반려동물을 기르며 어떤 점을 우려하고 있을까. 응답자 319명 중 41.4%(132명)가 '반려동물이 코로나19에 걸릴지 걱정된다'고 답했다. '재택근무가 끝나 반려동물이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 걱정된다'는 답변이 34.2%(109명)로 뒤를 이었다. 기타 21.3%(68명) 가운데는 '반려인이 코로나19에 걸렸을 때 돌봐줄 사람이 없다', '코로나19 이후 유기동물이 늘어날지 걱정된다' 등의 의견이 있었다.
한편 해외에서는 재택근무가 끝난 후 반려인과 함께 있는 생활이 익숙해진 반려견이 분리불안 증세를 겪을 수 있어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미 제기됐다. 미국 반려견 등록단체 아메리칸 켄넬클럽(AKC)은 재택근무 동안 반려견이 자기만의 공간에서 독립적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AKC는 "개들이 조금씩 반려인과 떨어져 있는 연습을 해야 한다"며 "개는 반려인의 감정을 쉽게 알아채기 때문에 불안한 마음을 드러내지 말고 평소처럼 행동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설명했다.
박정윤 올리브동물병원 수의사는 반려견에게 규칙적인 일과를 만들어주고, 신뢰를 쌓음으로써 분리불안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 수의사는 "개는 규칙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산책, 놀이, 반려인의 외출 등 정해진 일과를 만들어 주면 반려인이 집을 비우는 시간에 크게 상관없이 안정감을 느낀다"고 했다. 이어 "재택근무가 끝나기 전 시간을 정해놓고 반려동물과 분리한 상태에서 업무를 보거나 반려동물과 접촉하는 시간을 줄이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한편 동물보호단체들은 반려동물이 우리 정서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존재임은 분명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우울감이나 외로움 해소 등을 위해 즉흥적인 입양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정진아 동물자유연대 사회변화팀장은 "코로나19가 끝나도 반려동물은 10년 이상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점을 감안해 입양 전 충분한 고려와 고민이 뒤따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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