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대 오른 '부사관 성추행 사건' 수사… '2차 가해' 입증이 관건

입력
2021.06.0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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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욱 장관, 6일 수사 상황 점검 회의 주재

국방부 검찰단의 '성추행 피해 부사관 사망사건' 수사가 군 내 성범죄 수사의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그간 가해자의 1차 범행에 수사의 초점을 맞춰왔지만, 이번에는 사건 발생 이후 피해자에 대한 조직적 회유와 무마 시도, 병영 내 따돌림 등 2차 가해에 초점을 두면서다. 피해자가 극단적 선택을 한 배경인 탓이다.

이에 2차 가해와 군 내부의 방조 행위의 진상을 얼마나 철저하게 규명해 처벌하느냐에 따라 향후 군 내 성범죄 수사의 기준이 될 수 있다.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는 이번 사건으로 군 당국의 수사가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관심병사' 취급도 2차 가해로 처벌 가능?

서욱 국방부 장관은 6일 국방부 청사에서 국방부 검찰단장과, 조사본부장 등 수사 총괄 담당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수사 상황을 점검했다. 앞서 국방부 검찰단은 4일 공군본부 군사경찰단과 제15특수임무비행단 군사경찰대대를 전격 압수수색했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제20전투비행단에 성범죄수사대를 급파했다. 15비행단은 피해자인 A중사가 극단적 선택을 하기 직전 근무한 부대이고 20전비는 성추행 사건이 발생한 부대다. 가해자인 B중사가 2일 구속된 점을 감안하면 이번 조치들은 2차 가해에 대한 수사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20전비에 급파된 성범죄수사대는 5일과 6일 주말 동안 군사경찰과 간부들을 상대로 초동 대응과 수사 부실, 2차 가해 여부와 경위를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추행 사건이 발생한 날 '문제의 회식'을 마련한 20전비 소속 C상사는 피해자인 A중사에게 "없던 일로 해주면 안 되겠느냐"고 회유했고, D준위는 "살면서 한 번 겪을 수 있는 일"이라며 무마를 시도했다. 유족들은 성추행 사건 이후 옮긴 15비행단에서도 '관심병사' 취급하면서 피해자를 따돌린 정황이 있다고 주장했다.


가해자 휴대폰 압수영장 뭉갠 공군 검찰... 55일간 조사도 안해

국방부 검찰단은 20전비 군사경찰·검찰은 물론 공군본부 검찰단의 늑장 수사와 축소 보고 의혹 입증을 위한 증거 확보에도 주력하고 있다.

20전비 군사경찰이 가해자인 B중사를 최초 수사한 시점은 사건 발생 보름이 지난 3월 17일이다. 군사경찰이 확보해야 할 피해 상황이 담긴 차량 블랙박스도 피해자인 A중사가 제출했다. 20전비 군사경찰은 4월 7일 B중사를 '기소 의견'으로 군 검찰에 송치했지만, 군 검찰이 B중사를 조사한 시점은 55일이 지난 5월 31일이었다. 2차 가해 정황이 담겼을 것으로 추정되는 가해자 휴대폰을 군 검찰이 확보한 것도 이날이다. 6일 이채익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공군 검찰은 지난달 27일 군사법원으로부터 B중사의 휴대폰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고도 곧바로 집행하지 않았다. 31일에야 강압이 아닌 임의제출 방식으로 확보했다.

20전비는 또 A중사가 숨진 채 발견된 다음 날인 5월 23일 국방부 조사본부에 '단순 변사'로 보고해 축소 의혹을 받고 있다.

군 당국이 2015년 3월 발표한 '성범죄 근절 종합대책'에 따르면 직속 상관이나 해당 부대의 인사, 감찰, 담당자가 성범죄를 묵인하거나 방관하는 행위는 처벌 대상에 해당한다. A중사 소속 부대의 행위는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아울러 유족들은 공군이 선임해준 국선 변호인의 조력마저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간 변호사를 선임한 유족은 국선 변호인에 대한 추가 고소를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이와 별도로 2년 전 발생한 '공군 장교 성추행 방조' 의혹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다. 공군 소속 E대령은 2019년 9월 부하인 여성 대위에게 부적절한 술자리를 강요하고, 대령의 지인인 민간인에게 성추행당하는 상황을 방조한 의혹을 받고 있다. 대위는 군 당국에 피해를 호소하고 민간인을 고소했지만 무혐의로 결론났고, 공군 감찰실이 조사한 E대령의 성추행 방조 의혹도 혐의 없음으로 종결됐다. 하지만 피해자는 E대령으로부터 근무평정과 성과상여급 평가에서 최저점을 받았다. 이에 성추행 피해에 대한 제대로 된 수사는커녕 피해 신고에 따른 보복성 인사 불이익까지 받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승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