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집에 있다 보면 '스페셜'이라는 간판을 달고 방영되는 예능 프로그램을 TV서 자주 보게 된다. 스페셜이라고 하니 본 방송에서 담지 못했던 'NG 장면'이나, '감독의 편집본' 같은 색다른 장면이 나올 것을 기대하며 채널을 돌리지 않고 지켜보게 된다.
하지만 시청 후 늘 '속았다'는 감정이 들었다. 이미 방송한 프로그램을 다시 편성한, 말 그대로 '재방송'으로 특별함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알고 지내던 방송 관계자에게 이런 얘기를 하니, "시청자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요즘은 재방송을 스페셜로 표현한다"는 말이 돌아왔다. 아무리 포장이 중요한 시대라지만, 내용 하나 고치지 않은 재방송을 스페셜로 표현하는 행태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특별할 것 없는 재방송 얘기를 꺼낸 것은, 올해도 벌어질 것으로 보이는 재난지원금 지급 규모와 방식을 둘러싼 당정 간 갈등 때문이다.
복잡한 당정 갈등 구조를 단순하게 설명하면, 정부는 되도록 적은 재원을 써 소수의 사람들에게 지원금을 주자는 것이고, 여당은 되도록 많은 재정을 활용해 최대한 많은 국민에게 나눠 주자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 싸움의 구도와 내용은 작년에도 우리가 봤던 것으로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모두 기억하겠지만 당정 간 갈등이 심해지자, 여당에서는 부총리 '경질론'을 제기했고, 나라 곳간지기로 표현되는 홍남기 부총리 역시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사태가 심각하게 전개되자 내각을 총괄하는 총리가 부총리를 나무라는 일도 벌어졌다. 당연히 이를 지켜보는 국민 불안감은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국민이 불안해하니 이런 싸움 또 벌이지 말라며 원로들과 언론은 당시 여러 훈수를 뒀다. 재난지원금 지급 매뉴얼을 마련해 갈등의 단초를 제거해야 한다는 조언이 대표적이었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싸움을 피하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올해도 작년과 똑같은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재난지원금 지급 매뉴얼 등 제도를 단기간에 마련하기 힘들다는 사정은 잘 안다. 또 정부야 어떻게든 재정을 아껴 쓰려 하고, 정치인이야 표를 의식해 최대한 재정을 많이 활용하려는 속성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작년에 '부총리를 경질하네 마네' 하는 소란까지 겪었으면, 적어도 올해는 똑같은 일로 싸움을 벌이지 않을 최소한의 방지책은 마련해야 했었다.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과 청와대의 노력 부족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재정을 아끼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내보인 홍 부총리를 재신임했으면, 여당에서 정부 계산과 다르게 "돈을 더 쓰자"는 얘기가 안 나오도록 미리 최대한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올해도 만약 지난해처럼 당정 간 싸움에 별다른 개입을 안 하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한다면, 무책임을 넘어 무능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나랏일 하는 높은 분들이야 국가 중대사를 결정하는 일이니만큼 올해 싸움이 작년과 달리 더 특별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국민 입장에서는 하나도 달라진 것 없는, 그래서 더 보고 싶지 않은 재방송 싸움에 불과하다. 한번 속아본 뒤로는 스페셜 간판을 단 TV예능 프로그램을 다시 보는 일은 거의 없게 됐다. 특별할 것 없는 싸움을 계속하는 정부와 여당을 계속 지지할 국민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