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 무능 언제까지... 미얀마 사태 중재는커녕 학살만 부추겨

입력
2021.06.06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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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처음 간 방문단, 군부 주장만 경청
NUG "믿음도 기대도 없다"… 중재 무용론
진압軍, 아세안 면담 직후 시민 20명 사살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에 미얀마 사태의 중재를 바란 건 역시나 헛된 기대였다. 중재역으로서 처음 미얀마에 들어가 현지 실사를 하고도 해법을 마련하기는커녕 군부 변명만 듣는 데 그쳤다. 아세안의 무능은 군부에 자신감만 심어줬고, 대규모 시민 학살이란 최악의 결과로 나타났다. 아세안을 향한 국제사회의 불신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6일 외신을 종합하면 림 족 호이 아세안 사무총장과 에리완 유소프 브루나이 제2외교장관은 앞서 4일 미얀마 수도 네피도에서 쿠데타 수괴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과 면담했다. 4월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특사 파견이 합의된 이후 방문단이 미얀마에 들어간 건 처음이다. 이 자리에서 흘라잉은 “쿠데타는 부정선거를 바로 잡기 위한 결단” 등 기존 입장을 되풀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방문단이 흘라잉의 거짓 주장을 듣기만 했다는 점이다. 친주(州) 민닷 등의 민간인 피해에 대해 일부 우려의 목소리도 냈으나, 흘라잉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자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상 군부의 변치 않은 궤변만 경청한 셈이 됐다.

군부에 편중된 아세안의 행보는 민주세력의 분노를 더욱 증폭시켰다. ‘모든 진영과 대화한다’는 아세안 정상회의 합의가 무색하게 방문단은 민주진영을 대표하는 국민통합정부(NUG) 입장은 청취하지도 않았다. NUG 측은 면담 직후 “아세안에 더 이상 믿음도, 기대도 없다”고 비난했다. 이어 “아세안은 군부가 정상회의 합의를 지키지 않을 경우 대응 방안을 묻는 우리의 요구에 한 차례도 답하지 않았다”면서 앞으로 아세안의 중재 노력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군부는 방문단과의 면담 사진을 공개 하는 등 한껏 기세를 올렸다. 관영매체들은 “아세안과 테러단체(NUG) 활동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눴다”며 외교전 승리로 포장했다. 아세안의 묵인에 고무된 군부는 곧바로 자국민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진압군은 면담 이튿날인 5일 남부 에야와디주에서 시민 20여명을 사살했다. 아세안 정상회의 이후 일일 최다 사망자다. 미얀마 의사인권네트워크는 “쿠데타군이 새벽을 틈타 중화기를 동원해 마을을 급습했다”면서 “희생자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전했다.


하노이= 정재호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