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서로 반도체 굴기 선언…메모리 최강 '韓반도체' 위기이자 기회

입력
2021.06.0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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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를 포함한 대용량 배터리와 희토류, 의약품 등 4대 핵심 품목의 공급망 재편 방안이 최근 미국 백악관에 전달됐다. 지난 2월 24일, 4개 주요 품목의 공급망 문제를 100일간 조사하라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따른 후속 조치다.

이 가운데 관심은 단연 반도체다. 특히 로이터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브라이언 디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4일 브리핑에서 "반도체 공급망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책을 확인했다"고 밝히면서 전 세계 반도체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반도체 굴기를 선언한 미국이 어떤 형태로든 공급망 재편 작업에 속도를 낼 것으로 점쳐지면서다. 이 경우, 미국은 반도체 공급망을 자국 중심으로 구축한 데 이어 첨예하게 맞선 중국에 대한 제재 수위도 높일 가능성이 크다. 이는 미·중 의존도가 과도한 우리나라엔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美, 반도체 장비 내세워 中 제재 계속

지난 2월 하달된 반도체와 대용량 배터리, 희토류, 의약품 등에 대한 바이든 미 대통령의 공급망 확인의 표면적인 이유는 제조 기반 점검이었다. 하지만 이면엔 반도체 산업의 주도권 장악으로 중국 굴기 차단에 나서겠다는 포석이 깔렸다. 바이든 정부도 중국 기업을 대거 제재명단(블랙리스트)에 올리면서 전 정부의 강경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전문가들도 미국이 공급망 검토 결과를 내세워 중국의 반도체 산업 꺾기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에 대한 제재 수위가 높아질 것이란 시각이 나오는 이유다. 미국은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분야에선 한국과 대만 의존도가 높지만 고급 컴퓨터(PC) 칩 제작에 필요한 반도체 장비와 지적재산권(IP) 등의 시장에선 절대 강자다. 미국의 장비와 기술 없이는 첨단 칩 생산은 아예 불가능하다. 삼성전자나 일본의 소니, 대만의 TSMC도 미국 장비와 기술에 의존한다. 미국이 중국 반도체 기업에 대한 자국의 장비 수출을 엄격히 금지한 이유다.

"삼성전자·TSMC, 미중 중 한 곳 선택해야"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반도체 기업들도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양자택일의 기로에 내몰리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최근 "미국 반도체 기술이 절대 우세라 글로벌 반도체 회사들은 미국 편을 들어야 할 것"이라며 "그들(삼성전자·TSMC)은 미·중 사이에서 자신의 이익이 무엇인지 선택해야 한다"고 분석한 배경이다. 우리나라의 연간 중국 반도체 수출 비중은 60%에 달한다. 이 중 삼성전자 반도체 매출의 약 30% 는 중국에서 거둔 것으로 추정된다.

"합법적으로 미국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중국 기업과 거래할 수 있다고 해도 워싱턴의 정치적 압력 때문에 자체 검열을 할 것"이라는 FT의 분석처럼,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맞춘다고 해도 미국 장비로 반도체를 만드는 우리로선 중국 사업을 키울수록 대외적인 위험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반도체 자립을 선언한 중국이 한국을 향해 투자 압박을 할 가능성도 크다. 최근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는 삼성전자와 TSMC를 지목하면서 "워싱턴의 강압으로 중국 본토를 떠나면 기업은 물론 미국도 막대한 손실을 입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일각에선 미국이 한국·일본·대만 등 주요국과 중국 간 반도체 관련 중간재 교역을 대상으로 제재 조치를 발동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美·中 메모리 키우기 총력…삼성 타격받나

우리나라는 명실공히 메모리반도체 강국이다. 지난해 4분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D램 시장 점유율은 72%에 이른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의 행정명령엔 "핵심·필수 제품과 소재의 독과점 혹은 특정 국가와 기업 의존 여부를 검토하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경희권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미국으로선 첨단 메모리를 한국에만 의존하는 건 위험하다고 여길 수 있다"며 "미국이 공급선을 다변화하는 정책을 추진할 경우 국내 기업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D램은 가격 경쟁력이 필수인데, 미국이 반도체를 안보로 인식하는 만큼 막대한 보조금을 기반으로 자국 내 메모리 기업인 마이크론 키우기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대체 공급원 확보 차원에서 미국이 반도체 공급망에서의 일본 입지를 높여줄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미국 장비 수입이 금지된 중국의 경우엔 장비 국산화에 올인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중국 내 반도체 기업들도 고속성장 중이다. 이중 메모리반도체 기업인 양쯔메모리(YMTC)는 국가 지원에 힘입어 설립 5년 만에 최근 128단 낸드플래시 양산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만 시장조사기관인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이 업체의 낸드플래시 점유율은 내년 6.7%로 올해(3.8%)보다 배 가까이 뛸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까진 메모리반도체의 슈퍼 초호황이 전망됐지만, 뜻밖의 중국 기업 선전으로 내년부턴 낸드플래시 시장이 공급 과잉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중 갈등, 오히려 삼성전자에 기회"

일각에선 메모리반도체 업계의 쌍두마차인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미중 갈등 속에서 오히려 기회를 잡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특히 미국에 19조 원을 들여 추가 파운드리 증설을 발표한 삼성전자로선 미국의 첨단 정보기술(IT) 기업들을 신규 고객으로 흡수할 확률이 더 커졌다. 파운드리 키우기에 나선 삼성전자에겐 긍정적이다.

중국 역시 미국의 반도체 장비와 기술 없이는 사실상 반도체 자립이 불가능하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가 없으면 세계의 공장인 중국으로선 제품 생산에 상당한 차질을 빚게 된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 학회장은 "미국과 중국이 서로 반도체 산업을 경쟁적으로 키우는 상황에서 삼성전자는 가장 큰 두 시장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고 기술력도 가장 앞선다"며 "삼성전자는 메모리 초격차를 지렛대 삼아 계속 기회를 잡으면 된다"고 말했다. 기술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원가 경쟁력을 갉아먹어 시장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메모리 시장 특성상 후발주자가 삼성전자를 따라잡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김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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