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미군 철수 후 아프간 장악 움직임... 병력 동원해 공격 태세"

입력
2021.06.04 15:33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조직 탈레반이 미군 및 동맹군의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기회로 군사력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이 오는 9월 11일까지 완전 철군할 예정인 가운데 탈레반과 아슈라프 가니 정부 간 내전 상황이 격화하고 있다는 암울한 분석이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3일(현지시간) 전날 유엔이 발표한 보고서를 인용해 “미군 철수 후 탈레반이 아프간을 본격적으로 장악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고 전했다. 유엔은 보고서에서 탈레반이 주요 도시 주변에 병력을 동원해 공격 태세를 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탈레반이 협상을 통하거나 필요시 무력을 동원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믿는 것으로 보인다”며 “탈레반은 (목적 달성을 위한) 지렛대로 군사적 역량을 강화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아프간 국토의 50∼70%에서 활동 중인 탈레반이 국토 전역에 걸쳐 공격을 강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탈레반은 일단 미군이 완전 철수하는 9월까지 가니 정부 압박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몇 달 동안 탈레반은 아프간 전역에서 서서히 영향력을 늘리고 있다”며 공습 등 미군 작전이 중단되면서 탈레반은 대규모 병력과 보급 물자를 모으고 정부 장악 지역을 차지해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유엔 역시 “(탈레반) 그룹이 올해 군사 작전을 늘릴 가능성이 있다”고 밝히면서 “탈레반이 미국과의 협정에서 약속한 ‘알카에다와의 단절’을 진행해왔다는 증거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20년 가까이 진행된 내전이 다시 불타오를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면서 탈레반이 미국과의 평화 합의도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다만 탈레반 측은 유엔의 보고서에 대해 즉각 반발했다.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이날 발표한 성명을 통해 “이 보고서는 허위 정보를 바탕으로 작성된 것”이라며 “일방적인 보고서는 유엔 안보리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게 하며 국제적 신뢰도도 떨어뜨리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네드 프라이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보고서 내용을 인정한다면서도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수십 년간의 분쟁이 종식된 아프간”이라며 “세계는 아프간에서 무력에 의한 정부 수립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탈레반과 평화 합의에서 미군과 동맹군을 올해 5월 1일까지 아프간에서 철군하겠다고 약속했다. 9·11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오사마 빈 라덴과 테러집단 알카에다를 파괴할 목적으로 시작된 미국-아프간 전쟁이 개전 20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되는 역사적인 결단이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에 이어 집권한 조 바이든 대통령은 당초 약속 시한을 연장하면서 5월 1일부터 아프간 철군을 시작해 9월 11일 이전에 끝내겠다고 밝힌 바 있다.

김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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