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타냐후의 퇴장

입력
2021.06.04 18:00
22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역대 최장기(15년 2개월) 권좌에 앉아 있었던 베냐민 네타냐후(72) 이스라엘 총리의 퇴진이 임박했다. 그는 지난 2년간 치른 4번의 총선에서 노련한 연정협상으로 3번 모두 총리직을 지켰으나 반(反)네타냐후를 기치로 연대한 ‘레인보 연정’이 전격 성사되면서 막다른 골목에 몰렸다.

□ 그는 이스라엘에서 태어난 최초의 총리이지만 미국 메사추세츠공대(MIT)에서 유학해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고 친형은 팔레스타인 무장조직에 납치된 항공기에서 인질을 구해낸 ‘엔테베 작전’ 중 사망했다. 영어에 능통한 보훈가족이라는 출신 배경은 친미 안보국가인 이스라엘에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지도자의 조건인 셈. 외부 환경의 덕도 봤다. 2차 재임 기간 중(2009년~) ‘아랍의 봄’ 등 주변국들의 정정 불안이 장기화하면서 이스라엘 국민들의 안정희구 심리가 커졌다. 여기에 네타냐후는 팔레스타인 무장조직 하마스와 ‘선을 넘지 않는’ 충돌을 반복하면서 이를 장기 집권의 동력으로 삼았다.

□ 그는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마키아벨리스트라는 평가(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도 받는다. 묵은 과제인 이ㆍ팔 문제와 관련, 국제적으로 공인된 ‘2국가 해법’에 대해 시인도 부인도 않는 모호한 전략을 취하면서 서안지구 정착촌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실리를 챙겼고, 자신과 비슷한 나르시시스트 성향의 트럼프 대통령과 찰떡 호흡을 보이며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수도 공인, 미 대사관 이전 같은 선물을 얻어내기도 했다. 반면 이란과 핵 협정을 추진하던 오바마 행정부 시절 미 의회에 나가 “매우 나쁜 협상이다. 없는 게 낫다”고 직격탄을 날리는 등 능수능란한 외교가의 면모도 가지고 있다.

□ 중동전문 매체 미들이스트아이는 새 연정 구성에도 불구하고 ‘네타냐후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비비스트’로 불리는 강성 지지자들이 다양한 정당들이 혼재된 집권연정을 반대하는 시위로 압박하고 있으며, 설령 실각하더라도 제1야당의 리더로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본다. 수뢰ㆍ사기ㆍ배임 등의 재판에 따른 형사처벌 여부가 변수이지만 노회한 그가 호락호락하게 막후로 물러날 것 같지만은 않다.

이왕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