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강'은 너무 사람이 많고, '신본'은 제품이 자주 입고된다고 합니다. '압현'과 '압갤'은 동시에 대기하는 게 효율적입니다."
#"샤넬 매장에서 핸드백을 구입하려고 신용카드를 꺼냈다가 거절당했어요. 남자친구가 준 카드를 내밀었는데 구매자 명의의 신용카드로만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보상 심리로 인한 명품 소비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샤넬이나 에르메스 매장에서 인기 있는 제품을 단번에 구매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이런 상황에서 '오픈런'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여겨진다. 오픈런 관련 커뮤니티와 유튜브에 올라온 위의 사례로 볼 때 이제 전문 용어(?)나 유행어를 파악하는 것도 필수 코스가 됐다. 정보에 밝아야 빠른 시간 안에 원하는 상품을 손에 거머쥘 수 있기 때문이다.
해석부터 해보자. '신강'은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을, '신본'은 신세계백화점 본점을 말한다. '압현'은 압구정 현대백화점, '압백'은 압구정 갤러리아백화점이다. 또한 에르메스, 샤넬의 경우 인기 제품은 구매 제한을 두고 있으니 구매자 명의의 신용카드를 사용해야 한다는 의미다.
요즘 백화점마다 오픈런 현상이 다반사가 되면서 유튜브에서도 일반인을 넘어 연예인들까지 이를 체험하는 문화가 유행처럼 퍼지고 있다. 명품 소비가 큰 중국에서는 중고 명품시장까지 가파르게 성장해 젊은이들의 직업과도 연결되는 추세다.
"돈 쓰는 게 이렇게 힘들다니! 돈지랄 좀 하고 싶은데 잘 안 되네."
방송인 장성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이같이 말했다. 그가 4월 공개한 유튜브 동영상에서다. 그는 아내에게 선물할 가방을 사려고 새벽부터 '샤넬 오픈런'에 참여했다.
하지만 줄을 서고 대기하는 시간이 만만치 않았다. 온 가족의 기상 시간은 오전 5시 50분. 서울 롯데백화점 잠실점 에비뉴엘 정문에 도착해 오전 7시 30분부터 샤넬 대기줄에 섰다. 백화점 오픈 시간이 10시 30분인 걸 감안하면 3시간 전부터 줄을 선 것.
오전 10시가 되자 샤넬 매장 직원이 대기 번호표를 차례로 나눠줬다. 대기표를 받는데 직원의 말에 장성규는 두 귀를 의심했다. "입장하시기 10분 전에 연락드리는데 그 시간 지나면 아예 대기 취소 되세요."
천신만고 끝에 장성규와 아내는 샤넬 매장에 입성했다. 그러나 원하는 핸드백을 갖기 위한 아내와 매장 직원의 '밀당'이 눈물겹다. 아내와 직원의 대화는 이렇다. "샤넬 가브리엘 있어요?" "그 제품은 핑크색만 있어요." "클래식 미디엄은 있나요?" "지금 그것도 핑크만 있어요" "샤넬 19백은요?" "이 제품은 라지사이즈만 있어요."
하필이면 사넬 매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을 고른 아내. 장성규는 "샤넬백 사기가 이렇게 힘든 거야? 가방을 사기가 이렇게 어렵다고?"라며 지친 기색을 드러냈다. 결국 두 사람은 입장 1시간 20분 만에 보디크로스 미니백 하나를 구입했다. 대기 시간까지 합하면 장장 6시간 만의 '쾌거'였다.
영상을 본 한 시청자는 명언을 남겼다. "샤넬이 뭐길래 새벽부터 온 가족이 움직여야 하는 이 현실이 블랙코미디 보는 느낌이네요." 이 영상은 두 달 동안 150여만 건의 높은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개그맨 이창호와 김민수도 충격적 경험에 진을 뺐다. 이들은 지난달 오전 8시부터 샤넬 오픈런에 나섰다. 1시간이 지나자 30여 명이 줄을 섰다. 역시 오전 10시부터 번호표를 배부했고, 이들은 대기한 지 5시간 만에 매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물론 이들이 찾는 모델은 없었다. "탬버린 백 있나요?" "블랙 컬러는 없고, 지금 오렌지 컬러와 스팽글 소재로 돼 있는 것만 있어요." "블랙은 다 팔린 거구나, 맞죠?" "네. 오늘 따로 입고 안 됐어요." "그럼 클래식 백 있나요?" "기본(블랙)으로 찾으시는 거면 지금은 없어요." "코코핸들 있나요?" "지금은 없어요."
구독자의 의뢰로 미션에 나선 두 사람. 결국 300만 원대 보디크로스 미니백인 WOC(Wallet On Chain)를 챙겼다. 이 영상은 올라온 지 사흘 만에 약 9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샤넬 오픈런 체험에 혀를 내두른 이창호는 "심지어 내가 원하는 제품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게 충격이었다"는 소감을 전했다.
최근 유튜브에는 샤넬 오픈런 체험기가 쏟아지고 있다. 샤넬 오픈런 한 번 만에 원하는 제품을 운 좋게 산 사람, 매장 들어가는 게 힘들어 한꺼번에 여러 제품을 구매한 사람 등 갖가지 사연이 넘쳐난다. 유튜브의 주인공은 주로 20~30대 여성들이지만, 10대 여학생 및 20~30대 남성들도 눈에 띈다.
관련 영상을 올린 이들은 오랜 시간 대기해 획득한 제품을 두고 "대만족"이라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누구 하나 얼굴을 찡그리거나 욕하는 사람이 없다. 대신 자신의 경험을 최대한 풀면서 '꿀팁' 정보를 공유하기 바쁘다. 접이용 휴대의자와 장우산이 샤넬 오픈런 필수 준비물이라는 점은 유튜브를 통해 퍼졌다.
요새는 샤넬의 구매 규정에 대한 정보가 수두룩하다. 어떤 이는 "샤넬에서 살 수 있는 가방 개수는 한 달에 1개"라며 "지갑 등은 여러 개 살 수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이는 "샤넬 클래식 플랩백 스몰·미디엄·라지 사이즈가 많이 리셀(되파는 것)되다 보니, 1년에 1개밖에 못 산다고 매장 직원이 그러더라"고 전했다. 샤넬 클래식 플랩백의 경우 사이즈에 따라 800만~1,000만 원대에 이르는 고가 제품이다.
샤넬이 보상소비로 인해 수요가 높아지면서 에르메스처럼 구매 제한을 두는 방식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에르메스의 경우 유럽에선 수천만 원 대의 버킨백과 켈리백 등 인기 품목에 대해 1년에 한 번밖에 구입할 수 없다는 '설'이 퍼져 있다.
몇 시간씩 대기해도 사고 싶은 제품이 없는데 구매 개수까지 제한하는 일부 명품 브랜드의 불친절한 행태에도, 소비자들의 구매 욕구는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1년에 몇 차례씩 가격 인상을 단행하는 통에 "오늘 사는 명품이 가장 싸다"는 말까지 나온다.
그래서일까. 지난해 코로나19로 국내 패션업계는 여전히 고전하고 있지만 샤넬, 에르메스, 루이비통은 두둑하게 주머니를 채웠다. 이들의 지난해 연매출은 전년 대비 30% 넘게 증가해 총 2조4,000억 원에 달했다. 샤넬코리아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34% 증가해 1,491억 원을 기록했다.
에르메스코리아와 루이비통코리아도 각각 감사보고서를 통해 실적을 공개했다. 에르메스코리아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16% 늘어난 1,334억 원, 루이비통코리아의 영업이익은 무려 177% 증가한 1,519억 원으로 집계됐다.
백화점 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오픈런 현상이 더 확산하는 분위기"라며 "앞으로 여름 방학과 휴가철이 되면 백화점 밖 대기줄은 더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중국의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세대)들도 명품시장에서 '큰손'으로 통한다. 이들 역시 샤넬이나 에르메스, 루이비통 등 명품 브랜드의 가격 인상에 촉각을 세우고, 원하는 제품을 얻기 위해 적극적으로 '오픈런'에 가세한다.
전 세계 명품시장 매출 3분의 1이 중국에서 나오는 이유다. 업계에서는 중국이 2025년까지 전 세계 명품 매출의 절반을 차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면서 중고 명품시장도 빠르게 성장했다. 특히 이 시장도 젊은 소비자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는 상황. 베이징의 대외경제무역대(UIBE)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중국의 중고 명품시장에서 소비자의 50%가 30세 미만이었다. 이들 소비자들의 60.2%는 가죽 제품을 거래했고, 의류와 신발, 모자 등이 22.1%를 차지했다.
중국의 지난해 중고 명품시장 가치도 상승했다. 컨설팅업체 포워드 비즈니스 인포메이션에 따르면 중국의 중고 명품시장 가치는 2020년에 173억 위안(약 3조150억 원)으로 전년의 거의 두 배에 달했다.
하지만 그늘도 있다. 중국에서 명품시장이 커지면서 소위 '짝퉁'시장도 호황을 누리고 있다. UIBE에 따르면 중국의 공장들은 엄청난 양의 명품을 생산하고 있으며, 이들 중 상당수는 약 4조 위안(약 697조 원) 규모의 내수시장이다.
중고 명품시장과 짝퉁 시장의 호황으로 요새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뜨는 직업도 생겼다. 명품의 진위 여부를 가리는 '명품 감정사'다. 명품에 대한 관심이 아예 직업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그러면서 명품 감정사를 양성하는 기업 역시 관심을 받고 있다. 베이징에 본사를 둔 '엑스트라오디너리 럭셔리즈 테크놀로지'는 명품 감정을 해주는 기업이면서 전문 인력도 양성하고 있어 최근 젊은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곳의 설립자인 장첸 대표는 10년 전 문을 열고 직접 명품 감정사 수업을 이끌고 있다.
수업은 일주일 과정이다. 수료하면 직원으로 채용되기도 하지만, 스스로 창업하는 이들도 있다. 수업료로 1만5,800위안(약 275만 원)이라는 많은 돈이 들지만, 학생들은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는 가격"이라고 말한다.
수업에서는 위조품을 가려내고 중고품을 평가하는 등의 필요한 기술을 배운다. 핸드백과 벨트 및 의류의 일련번호, 스티칭 및 로고 등을 구분하는 훈련도 받는다. 장 대표는 "샤넬 로고에서 정사각형과 직사각형의 글꼴이 어떤 제품에 사용되는지 알면 시중에 나와 있는 짝퉁의 3분의 1을 감별해 낼 수 있다"고 자신했다.
물론 일부 명품 브랜드들은 제품에 칩을 부착하는 등의 방식으로 검증을 첨단화하고 있다. 루이비통은 2019년 블록체인 플랫폼 아우라를 론칭해 상품을 등록시키고 있으며, 페라가모는 여성용 신발 밑창에 마이크로칩을 삽입하고 있다. 버버리는 무선 주파수 식별 기술(RFID)을 제품에 시험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명품 감정사 같은 아날로그 기술을 가진 전문가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 명품 감정사가 진짜 제품인지를 가려내는데는 대체로 10초 정도면 충분하다고 한다.
장 대표는 "지난해 우리 회사의 거래가 전년보다 약 30% 증가했다"면서 "중국의 중고 명품시장이 계속해서 빠르게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샤넬 비타뤼미에르 쿠션은 단종됐어요. 이제 출시되지 않아요."
직장인 강희진(가명·43)씨는 최근 서울 강남의 한 샤넬 화장품 매장을 찾았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평소 사용하던 샤넬의 비타뤼미에르 쿠션(8만4,000원)을 사려고 했는데 이 매장의 직원은 제품 자체가 단종됐다며 다른 쿠션 제품을 권했다.
조씨는 "정말로 단종됐느냐?"고 재차 확인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같았다. 다른 매장에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조씨는 곧바로 지하로 연결된 A백화점으로 향했다. 1층 샤넬 매장을 방문해 직원에게 같은 제품이 있느냐고 물었고, 이곳 직원은 "당연히 있다"면서 제품을 가져왔다.
이처럼 보상소비가 폭증할수록 낯 뜨거운 경쟁도 펼쳐진다. 이들 샤넬 매장은 A백화점 안과 밖(지하)에서 따로 운영되지만 이 백화점의 관리를 받고 있다. 즉 A백화점 내 같은 브랜드 매장인 것.
백화점 1층에서는 기존 고객들을 위해, 지하 매장에선 젊은 층의 유입을 목적으로 운영되는데 실적 경쟁으로 살벌한 신경전이 벌어진 셈이다.
그런가 하면 더 많은 명품소비를 부추기는 유혹도 있다. 실제로 신세계백화점은 지난달부터 명품 매장에 대기 없이 입장할 수 있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코로나19 시국에 명품 매출이 효자 노릇을 하자 아예 '큰손' 모시기에 팔을 걷어붙인 셈이다. '패스트트랙 서비스'는 백화점 업계에선 처음 시도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호사는 아무나 누릴 수 없다. VIP 고객 중 연간 구매금액이 1억 원 이상인 다이아몬드 회원과 최상위 999명인 트리니티 회원이 그 대상이다. 결국 1년에 1억 원은 써야 대기 없이 입장이 가능한 것이다.
신세계백화점 내 루이비통, 구찌, 디올 등 대부분의 명품 매장에서 이번 서비스를 받아들였다. 다만 에르메스와 샤넬은 동참하지 않는다.
백화점 입장에선 막대한 돈을 쓰는 고객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의미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4월 신세계와 롯데, 현대 등 백화점 3사의 매출은 전년 동월보다 34.5% 증가했다. 2월부터 3개월 연속 증가세를 유지한 것인데, 그중에서 명품 매출(57.5%)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명품소비 고객들이 백화점을 먹여살린 셈이다.
특히 샤넬과 에르메스, 루이비통 등 3대 명품 매장을 보유하고 있는 백화점 실적이 상승한 것으로 나타나 이들을 향한 유치 경쟁은 더욱 뜨거워지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