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영혼의 살인 헤이트 스피치를 멈춥시다" 재일동포 작가의 호소

입력
2021.06.04 10:30
日 차별금지법 조기 제정 호소문 
재일동포 2세 소설가 후카자와 우시오

재일동포 2세 소설가 후카자와 우시오(深沢潮ㆍ55)씨가 지난달 26일 자신이 직접 겪고 주변에서 봐 왔던 차별의 체험을 이야기하고 차별금지법의 조기 제정을 호소했다. 2016년 6월 3일 시행된 ‘본국(일본) 외 출신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적 언동의 해소를 향한 대응 추진에 관한 법’, 약칭 ‘헤이트스피치 해소법’ 5주년을 맞아 ‘인종차별철폐기본법을 추구하는 의원 연맹’이 주최한 모임에서 발표했다. 의원연맹은 하쿠 신쿤(白真勲) 참의원(입헌민주당)이 회장을 맡고 있는 초당파 국회의원 모임이다. 한국일보는 연설문 전문을 작가의 동의를 받아 한국일보닷컴에 게재한다.

후카자와 작가는 연설에서 어렸을 때부터 재일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따돌림을 받고 취업과 연애 때도 차별받았던 경험, 그리고 과거 신오쿠보에서 열렸던 혐한 시위를 지켜본 경험을 이야기한다. 또 일상에서 재일한국인임을 계속 의식하며, 이 사실이 노출돼 차별받지 않을까 항상 걱정하며 살아야 하는 현실을 말하고 있다. 또한 아무리 BTS나 K팝이 일본에서 인기가 있어도 재일한국인을 차별하는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며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호소한다.

후카자와 작가는 2012년 ‘가나에 아줌마’로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R-18 문학상’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재일동포, 여성으로서 겪는 차별이나 빈곤 문제 등 사회적 문제의식을 담은 책을 주로 썼다. ‘한국과의 관계 단절’ 운운하는 기사를 낸 일본 주간지에 “나는 혐오를 조장하는 이 매체의 차별 선동을 간과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기고를 중단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전문] ‘헤이트스피치해소법’ 5년,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원한다

작가 후카자와 우시오입니다. 이 모임에서 연설을 하는데 있어서, 어떤 이야기를 할까 고민했습니다. 오늘은 저의 피차별 체험에 대해 언급하려고 합니다. 여러 장면이 떠올라 상처가 욱신거리지만, 그래도 말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그래야 당사자의 마음이나 상처가 전달되지 않을까 해서 얘기하기로 했습니다.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겠습니다. 저는 아버지로부터는 2세, 어머니로부터는 3세인 재일한국인입니다. 저 자신은 30세에 일본 국적을 취득했지만, 부모님은 한국 국적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한국인을 차별하는 공기를 마시고 살아왔습니다. 아마 그 공기의 성분은 지금도 그다지 많이 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도 한국인 차별을 내면화하고 있었습니다. 저를 한국인으로 낳은 부모를 미워하고 저를 미워했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 친구가 “저 애는 한국인”이라고 ‘아웃팅(폭로)’했고(당시 언니가 심장병 때문에 따돌림을 당하지 않으려고 우리 집은 통칭명(실제 성이 아닌 일상에서 사용하는 성)을 사용했습니다. “한국인은 냄새 난다” “기분 나쁘다”라고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받은 것에 충격을 받아 자살을 시도했던 적도 있습니다. 집에 수면제가 없어서 위장약 한 병을 다 먹었습니다. 죽을 리가 없는데 바보 같지요. 속이 메슥거려 모두 토하고 무사했습니다.

그 후로도 계속, 자신이 싫고 자신감도 없었던 고등학교 시절을 거쳐 대학생이 되고, 변함없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들키지 않도록 조마조마하며 살았습니다. 취업활동을 할 때는 국적 차별에 노출되었습니다. 어떻게든 사회인이 됐지만 교제 상대로부터 “한국인은 피가 더럽다”라든가 “한국인이라니 실망이다” 같은 소리를 듣고 헤어진 적도 있습니다. 직장에서의 아웃팅도 있었습니다.

결혼해서 어머니가 되고 ‘마마토모’(아이 엄마끼리 친구 맺는 것을 가리킴)들을 사귀다 보니까 제가 한국 사람인 줄 모르고 한국 사람들을 비하하는 발언을 하는 장면을 마주쳤습니다. 잠자코 듣고 있었습니다만, 마치 심장에 바늘이 찔리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작가가 되고 나서는 인터넷상의 헤이트스피치(혐오발언)뿐 아니라, 제 집에 발신인 불명의 협박편지가 들어와 이사할 수밖에 없었던 때도 있습니다.

또 제 아들은 축구나 야구의 한일전 다음 날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고 불평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한국이 이기거나 하면 특히 급우들이 한국이나 한국인에 대해 심한 말을 하는 걸 듣는 게 힘든 것 같았어요.

2013년 재일동포 가족 이야기를 담은 단편집 ‘한사랑-사랑하는 사람들’을 출간하여 다양한 재일한국인의 모습과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의 어려움을 그려 왔습니다.

그런 내가 ‘헤이트 데모(혐한 시위)’라는 것에 직접 조우한 것은, 첫 번째 책을 간행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한국 음악과 드라마를 좋아하는 친구들과 신오쿠보에 삼겹살을 먹으러 갔다가 큰길에 있는 건물 2층에 있는 카페에 들어갔습니다. 그 카페는 잘생긴 점원이 있다고 소문난 가게였습니다. 친구가 보고 싶어했던 점원은 없었지만 아늑하고 과자도 맛있어서, 우리는 창가의 자리에 앉아 수다를 떨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잠시 후 왠지 밖이 소란스러워져서 창밖을 보니 재특회(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가 대열을 이뤄 시위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확성기에서 참기 힘든 말들이 들리고 플래카드에는 차별 그 자체인 문구들이 적혀 있습니다. 그때, 친구는 갑자기 안색이 변하고 불안에 떨고 있었습니다. 웃는 얼굴을 하고 있던 카페의 점원은 얼어붙은 듯한 표정이 되어 있었습니다.

솔직히 나는 그들이 외치는 헤이트스피치나 플래카드 문구에 큰 충격을 받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아까 말한 것처럼 재일한국인으로 태어났을 때부터, 차별받는 것에도, 증오의 말을 듣는 것에도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든 생각은 역시 나는 미움받고 증오당하는 존재구나 하는 체념의 기분이었습니다. 몸에 흐르는 피가 점점 식어가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오히려 친구나 점원의 반응에 가슴이 더 아팠습니다. 좋아하는 사람들, 한국 아이돌이 상처받는 말을 듣는 일로 친구도 상처받고 있구나. 분명 설레면서 일본에 왔을 ‘뉴커머’ 젊은이를 한순간에 절망케 하는구나. 미안하다, 라고 생각해 버리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잠깐 생각해 보니 “차별하는 사람이 나쁜 것이다”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비열하고 용서하기 어렵다는 생각과, 이 장면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때가 40대였는데, ‘차별을 하는 사람이 나쁘다’는 걸 처음 깨달았습니다. 오랜 시간이 걸렸죠. 그리고 이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 이 마음의 움직임을 소설로 쓰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태어난 것이 ‘초록과 빨강’이라는 작품입니다. 이는 평소에는 자신이 한국인임을 의식하지 않으려 했던 재일 4세 여대생 ‘지영’이 헤이트스피치와 조우하고 마음에 병이 들고 마는 이야기입니다. 등장인물은 다양합니다. 지영의 친구이자 K-POP을 좋아하는 아즈사, 아즈사와 사랑을 하는 신오쿠보의 카페 점원 준민, 지영과 한국에서 만나는 재일 3세인 류헤이, 차별 반대에 눈을 뜨는 중년 여성 요시미 등입니다. 각각 헤이트스피치에 어떻게 마주하고, 인간관계나 사람들의 마음이 헤이트스피치에 의해서 고통을 겪는가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 소설이 간행된 것은 2015년으로, 지금으로부터 6년 전입니다. 이듬해 ‘헤이트스피치 규제법’이 생긴 지 5년이 지났습니다. 그럼 그때부터 재일동포를 둘러싼 환경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헤이트스피치 규제법에 준하여 조례를 제정한 지방자치단체도 있고, 재판이 이루어져 결과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신오쿠보에서의 헤이트 데모는 없어졌고, 전국에서 헤이트 데모 자체의 빈도도 줄었습니다만, 형태를 바꾸어 헤이트스피치는 퍼지고 있습니다.

당사자의 마음이 편안해졌을까요? 차별이나 헤이트스피치가 줄었을까요?

이제 2021년 현재, 한 재일한국인 김씨에게 일어날 수 있는 하루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김씨는 40대에서 50대 여성으로 합시다. 재일한국인이 얼마나 일상적으로 차별을 받고 있는지, 그리고 그 차별에 대해 공포와 불안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 전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벽, 김씨는 지진으로 눈을 떴습니다. 많이 흔들렸습니다. 요즘 지진이 많지요. 여러분은 지진이 일어났을 때 가장 먼저 무슨 생각을 합니까. 어느 정도의 진도인가, 피해는 없는가. 과연 쓰나미가 일어날지 어떨지 같은 것이죠. 하지만 김씨는 다릅니다. 또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뿌렸다’는 인터넷 유언비어가 유포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 합니다. 한국인이나 재일한국인에 대한 헤이트스피치를 보고 싶지 않아 인터넷과 SNS는 아예 피하려고 하는 김씨입니다만 지진 정보를 보기 위해 스마트폰을 켭니다. 아니나 다를까, 인터넷에는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뿌렸다’라는 유언비어가 떠 있었습니다. 김씨는 재난 대피소에 갔을 때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쫓겨나고, 무슨 해코지라도 당하거나 자칫 살해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워서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뭔가 없어지거나 하는 문제가 생기면 한국인이기 때문에 자신이 훔쳤다고 의심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듭니다. 우리는 범죄를 저지르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절도단의 유언비어도 뿌리 깊습니다.

→타이쇼시대에 일본에 온 제 할아버지는, 관동대지진으로 하마터면 자경단에게 살해될 뻔했습니다. (경찰에게 보호받고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우물에 독 루머를 보면 전 떨릴 때가 있습니다.

잠을 설친 탓인지 평소보다 기상 시간이 늦어진 김씨는, 황급히 아이를 내보낸 후 텔레비전을 보면서 식사를 합니다. 와이드쇼에서는 한국 얘기가 나와서 얼른 채널을 돌렸는데 다른 방송국에서 같은 주제를 다루는 것을 보고 지겨워 TV를 껐습니다. 출연자들이 한국의 험담을 하고 조소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고 시청자들에게 혐한을 심어줄 것 같아 차마 볼 수 없습니다.

→여전한 텔레비전 프로그램. BTS가 그래미상에 노미네이트 되어 세계나 일본에서도 큰 인기여도, 전혀 상관없습니다. 재일한국인이 헤이트나 차별에 노출되는 현실은 뿌리 깊게 존재합니다. 또 K-POP이나 한국 드라마가 이렇게 인기가 많으니까 괜찮아, 한국인이나 재일에 대한 차별이 없지, 나는 차별하지 않아, 이런 말을 선의에서 하는 사람들에게는 괴로운 마음을 토로할 수조차 없습니다. 힘들어도 억누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면 헤이트나 차별은 없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차별이나 혐오에 분노, 목소리를 높이면 "한국인은 화를 참을 수 없다" "한국인은 거짓말쟁이다"와 같은 언설에 의해 무효화되고 맙니다. 입막음을 당하는 것입니다. 성격이나 국민성 같은, 말하자면 픽션에 의해서, 이 또한 혐오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없는 것처럼 만들어 버립니다.

→이것은 제가 주간 포스트의 릴레이 연재를 내린 이유이기도 합니다. “한국은 필요 없다”라는 기사의 “한국인은 분노를 참을 수 없다”라는 한국인의 논문을 인용한 ‘분노의 무효화’는 큰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차별이나 불합리에 대한 정당한 분노를, “쉽게 화를 내니까”라고 근거가 위태로운 국민성, 자질의 문제로 돌려 버리는 것은 위험합니다.

김씨는 역 건물의 서점에 신간 소설을 사려고 들어가지만, 혐한 책이 진열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 심장이 두근거립니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도 혐한 책이 쌓여있습니다. 가급적 그것들을 보지 않으려 하지만, 계산대 앞에 줄을 서 있는데 앞 사람이 혐한 책을 들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내가 한국 사람인 것을 안다면’ 하고 생각하자 안절부절 못합니다. 어쩔 수 없이 책 사는 것을 포기하고 서점을 나섭니다. 혐한 서적에 대해 대부분의 서점, 출판, 언론은 별로 문제 삼지 않고 있지 않습니다. 배본 시스템의 문제도 있지만, 팔리면 된다는 생각은 뿌리 깊습니다. 그리고 당사자는 마이너리티이기 때문에 목소리가 닿지 않습니다. 애당초 목소리를 낼 수조차 없습니다. 재일한국인들에게 혐한 책이 있는 서점은 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 흉기를 파는 곳으로 느껴집니다.

전철을 타고 친정으로 향합니다. 열차 안에 있는 주간지 광고를 보는데 오늘은 한국에 대한 욕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대신 중국을 너무 깎아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결코 안심할 수 없었습니다. 이 나라에 살고 있는 한국인이나 중국인, 외국인의 존엄성은 가볍게 취급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당신들의 생명은 가볍다는 말을 계속 듣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갑니다. ‘김씨’라고 부르면 긴장이 됩니다. 이는 은행 등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사가 차별주의자가 아니기를 진심으로 빌면서 진찰을 받습니다. 퉁명스런 태도는 이쪽이 한국인이기 때문일까 하고 엄마가 우울해 합니다. 달래느라 고생을 많이 합니다. 앞으로 돌봄이 필요하게 되면 간병인이 어머니에게 혐한을 하지 않을지, 몹시 신경이 쓰입니다. 항상 불안과 두려움이 뒤따릅니다. 요양 시설을 찾을 생각을 해도 한숨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어머니와 레스토랑에 들어갔습니다. 대기자 명단을 적는 곳에 ‘김’이라고 적는 걸 잠시 망설입니다. 이 레스토랑 종업원이 인종 차별주의자면 어떡하지? 식사에 뭔가 이상한 것을 넣는 것 아닌가? 하고 불안이 솟아오릅니다.

어머니와 헤어진 후 한숨 돌리려고 도토루커피에 들릅니다. 옆에 앉은 남성들이 정치, 외교 얘기를 하면서 한국을 매도하기 시작해 자리를 옮겼습니다.

슈퍼에서 쇼핑을 합니다. 장아찌 코너에서 김치를 담습니다. 중학생 아들의 학원 도시락에 김치를 넣어주고 싶지만, 냄새가 신경 쓰이니 김치는 넣지 말라고 합니다. 아들의 친구는 부담 없이 김치를 넣어 온다고 합니다만, 아들은 지나치게 신경을 씁니다. 지금 일본에서 절임 반찬 중에서 가장 잘 팔리고 있는 것은 김치라고 합니다. 그러나 재일한국인에게 김치는 차별의 상징이기도 했고 지금도 그 단면이 남아 있습니다. “김치 냄새”라고 직접 들은 경험도 있습니다. 부모 세대는 김치 냄새 난다는 말을 듣고 집을 임대하지 못한 적도 있었을 정도입니다.

가족끼리 저녁 식사 후, 정리를 하고 목욕을 합니다. 이제 하루가 다 가네요. 자기 전에 녹화한 한국 드라마를 봤습니다. 인기 드라마는 재미있고, 다음이 기다려집니다. 그 후 이불 속으로 들어갔는데 잠이 오지 않습니다. 주연인 배우는 일본에서도 대인기입니다만, 아무리 한류 드라마가 유행한다고 해도, K-POP 아이돌이 음악 순위 상위를 차지한다고 해도, 재일한국인의 마음은 평온하게 살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 차이에 다시 마음이 괴로워집니다. 항상 재일한국인임을 의식하게 되는 것이 부담스럽습니다. 차별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따라다니며, 아이나 늙은 부모를 생각하면 쉽게 잠이 오지 않습니다. 이대로라면 마음이 무너지는 것은 아닐까, 또 다른 불안이 엄습해 옵니다.

특히 병원이나 음식점은 생명에 관계되는 일입니다. 재일한국인은 상처가 마르지 않고 더 새로운 상처가 늘어만 가는 나날입니다. 이렇게 살다 보면 자신감은 꺾이고, 영혼은 깎이고, 자존감은 갖기 어렵습니다. 내팽개쳐지고 삶의 희망을 잃게 됩니다. 사실 재일한국인의 자살률은 매우 높습니다.

이러한 일은 많든 적든 재일한국인이 경험하고 있는 일입니다. 김씨의 하루에 일어난 일은 결코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DHC나 아파호텔, 후지주택 등 혐오를 말하는 기업은 금방 꼽을 수 있습니다. 정치가나 연예인, 문화인, 유명인사도 혐오발언을 가볍게 내뱉습니다.

저희는 이런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분명 지금도 제가 그랬던 것처럼 한국인인 자신을 긍정할 수 없는 생각을 가진 어린이나 젊은이는 많이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차별의식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나 젊었을 때는 직접 듣는 것이 혐오발언의 주된 형태였지만, 인터넷에 의해 헤이트스피치 및 차별은 오히려 강화된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가시화되면서 모방하고 마치 오락처럼 혐오발언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차별을 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 법률로 심판받지 않는다. 그럼 헤이트스피치는 사라질 리 없겠죠.

제도가 먼저냐, 민의가 먼저냐 하는 말이 종종 있지만, 어느 쪽이냐고 논의할 시간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한시라도 빨리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을 만들어 주었으면 합니다.

여성 차별에 관해서는, 페미니즘의 고조도 있고 의식도 바뀌고 있습니다. 백래시도 있지만 언젠가 여성 차별은 해소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권자의 절반이 여자이고, 말하자면 다수파이기 때문이죠. 일본 사회에 있어서 절대적인 소수파, 마이너리티인 재일한국인은 자신들만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하물며 선거권도 없습니다.

재일코리안이나 외국인은 의원 분들에게 표밭이 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재일코리안이나 외국인은 의원 분들과 일본인 유권자에게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법이 생기면 반드시 사회 분위기가 바뀝니다. 그렇기 때문에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 필요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괴로워하고 상처받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재일코리안도 외국인도 이 사회에 함께 살고 있습니다.

자신과는 관계없다, 라고 생각하지 말고 부디 영혼의 살인, 헤이트스피치를 멈춰 주세요. 차별을 없앱시다.

흔히 “차별을 하는 것은 부끄럽다”라고 양식이 있는 일본인은 말합니다만, 차별은 부끄러우니까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인권침해이며 존엄을 빼앗는 행위이기 때문에 용서되지 않는 것입니다.

(혐오발언을 들으면) 그냥 내버려 두는 게 좋다는 말도 있지만 그냥 흘려들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헤이트스피치를 받는 당사자에게 차별은, 혐오는 지금 여기에 있는 위기입니다.

목숨을 구해주세요.

오늘은 재일한국인의 이야기를 당사자로서 했습니다만, 어디 출신이든, 어떤 속성이든, 이 나라에서 태어나서 다행이라고 생각되는 사회를 만들어 주세요. 만들어 갑시다. 저도 그것을 위해 뭔가 공헌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도쿄= 최진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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