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2017년 미국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 동물보호소에서 공격성 테스트에 탈락해 안락사 위기에 처했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리트리버 믹스견 '베이컨'입니다. 당시 보호소는 제 밥그릇에 플라스틱 모형 손을 접근시켜 반응을 보는 테스트를 했는데, 그만 제가 모형 손에 달려들어 공격성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테스트 결과는 탈락이이었고, 다음 수순은 안락사였습니다.
하지만 테스트가 인위적이며, 개의 공격성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다는 전문가의 지적이 이어졌고 저는 안락사 문턱에서 살아남아 새로운 가정에 입양될 수 있었습니다.
지난달 22일 경기 남양주시 야산 입구에서 50대 여성이 개에게 공격당해 숨지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당초 시가 사고를 낸 개를 안락사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커졌는데요. 경찰은 동물보호법에 사고를 낸 개의 조치에 대한 조항이 없어 일단 경찰 수사 종결 때까지 안락사 결정을 미루기로 했다고 합니다.
사고를 낸 개 보호자, 개에 대한 처분이 이뤄져야 하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사고견→안락사'가 유일한 공식은 아니라고 합니다. 신주운 동물권행동 카라(KARA) 정책팀장은 "왜 사고견이 공격성을 보였는지, 훈련이나 치료를 통해 개선의 여지가 있는지 등을 점검해 (안락사를)결정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저는 이에 동의합니다. 독일 뮌헨대 동물복지연구소에서 동물복지·동물행동분야를 전공한 이혜원 잘키움동물복지행동연구소 수의사는 "사고를 낸 동물을 무조건 안락사시킬 게 아니라 전문가들로부터 도출된 평가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해외는 어떨까요. 미국에서는 제가 겪었듯이 위험한 개를 대상으로 공격성 테스트를 시행해왔지만, 적절성 논란이 불거지면서 테스트를 통한 안락사를 점차 줄여가는 상황입니다. 이혜원 수의사에 따르면 독일과 영국의 경우에도 2~3시간이나 걸리는 기질평가는 기본이고 사건별로 동물의 행동 분석을 자세히 분석해 안락사 여부를 결정한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독일의 경우 사고견이 실제 안락사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다고 합니다.
해외라고 해서 모든 개가 안락사를 피하지는 못합니다. 호주 ABC방송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호주 퀸즐랜드주 선샤인코스트 의회는 17개월간의 법적 공방 끝에 아메리칸 스탠퍼드셔 테리어 '사지'를 안락사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사지는 2016년 소형견을 죽이고 다른 동물과 세 차례 사고를 일으켜 2019년 4월 붙잡혔는데요. 사지 가족은 안락사를 막기 위해 수만 달러를 들여 재판에 나섰지만 결국 패소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도 이를 둘러싼 논란은 있었습니다. 행동전문가들은 "모든 개는 공격할 수 있는데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며 "재훈련 적합성에 대한 충분한 평가가 이뤄지지 않아 이 같은 결과가 나타났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모든 사건은 일률적인 테스트가 아닌 개별적으로 봐야 한다고 했고요. 사지는 그래도 평가를 받을 기회가 있었고, 또 17개월 동안 많은 사람이 고민하는 절차를 거쳤습니다.
반면 한국은 개물림 사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아직 테스트 기준조차 없는 상황이죠. 정부는 공격적인 개의 기질평가 테스트 필요성을 인식하고 2022년부터 시행을 위해 준비 중이라고 하지만 법안 발의, 국회 통과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나아가 공격성을 유발하는 환경에서 개를 기르는 걸 통제하지 않으면서 사고가 났을 때 무조건 동물의 책임으로 돌려선 안 된다는 주장에도 동의합니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개물림 사고 예방을 위해서는 개가 공격성을 보이는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라며 "동물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기르는 게 동물복지에도 좋지만 이것이야말로 지역사회에 위험한 개를 만들지 않는 방법이다"라고 주장합니다.
무조건 사고를 낸 개를 안락사시키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다만 그 결정은 감정에 휘둘려서가 아닌, 과학적 판단에 따라야 한다는 게 제 입장입니다. 또 이번 남양주 사건의 경우 결국 사람이 방치해 기르며 개를 농장과 거리로 내몬 결과이기도 합니다. 모든 책임을 사고견에게만 돌리지 말고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