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돼지

입력
2021.06.0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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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시집에 가 (정성을) 바친다고는 하거니와 어찌 괴양이는 품고 있느냐?”

효종이 셋째 딸 숙명공주에게 보낸 한글 편지의 한 구절이다. 숙명공주는 고양이 사랑이 극진했다고 한다. 딸이 고양이만 애지중지하다 혹여 시댁 어른들께 누를 끼칠까 우려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그려진다.

편지에서 ‘괴양이’가 눈에 띈다. ‘괴양이’는 ‘괴’에 접미사 ‘앙이’가 결합된 어형이다. ‘괴발개발’이라는 말에도 남아 있듯이 고양이의 중세어 어형은 ‘괴’이다. 괴에 ‘작은 것’을 지시하는 접미사 ‘앙이’가 결합하여 ‘괴앙이, 괴양이’ 등으로 쓰이다가 현대에 ‘고양이’로 정착하였다. 그러니까 원래 ‘고양이’는 고양이 새끼 또는 작은 고양이를 지칭하는 표현이었을 텐데 고양이 일반을 가리키는 것으로 용법이 확장되었다. 결과적으로 기존에 쓰이던 ‘괴’는 소멸하였다.

유사한 예로 ‘돼지’가 있다. 돼지의 중세어 어형은 ‘돝’이다. ‘돝’이나 ‘도’에 작은 것을 지시하는 접미사 ‘아지’가 결합하여 ‘되아지, 되야지, 도야지’ 등으로 쓰이다가 20세기 이후 ‘돼지’로 형태가 굳어졌다. 돼지도 원래는 새끼 돼지를 이르는 말이었으나 다 자란 돼지까지 폭넓게 지칭하게 되었다. 동일하게 ‘아지’가 결합된 강아지, 송아지, 망아지가 개, 소, 말과 대칭을 이루는 것과 비교된다.

요즘은 반려견을 키우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개와 강아지의 구분도 흔들리는 것 같다. 집에서 같이 생활하는 다 자란 개를 ‘강아지’로 지칭하는 일이 많다. 다 자란 큰 개여도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대상은 강아지가 된다. 조만간 강아지가 개를 밀어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남미정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