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여 중사 성추행 사건과 관련한 군의 대처가 허술하기 짝이 없었던 정황이 하나둘 드러나고 있다. 피해자가 현장 블랙박스까지 제공했는데도 가해자 조사는 신고가 있고 2주 지나서 시작됐다. 군의 성범죄 대응 지침에도 있는 피해자 가해자 분리도 그때서야 됐다. 사실 규명에 필수인 가해자 휴대폰 확보는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뒤였고, 피해자의 죽음을 국방부에 보고할 때 성범죄 피해 사실은 언급도 하지 않았다. 공군이 조직적으로 사건을 축소하려 했다는 의심을 살 만하다.
마침 다른 공군 부대에서 발생한 군사경찰의 여군 숙소 무단침입·불법 촬영사건에서도 부대가 가해자를 비호하며 수사가 부실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여 중사 사건 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최고 상급자까지 엄정 조사를 지시하고, 공군이 맡았던 조사를 국방부가 가져와 사실상의 합동조사단과 민간인 참여 수사심의위원회까지 꾸려 수사하겠다고 했다. 그런데도 조사가 제대로 되겠냐는 냉소가 나오는 현실을 군은 직시해야 한다.
성범죄 대응 매뉴얼을 갖추고 무관용 엄벌 원칙을 천명했음에도 성범죄와 집단적 은폐 행위가 근절되지 않는 것은 군 고유의 위계, 폐쇄적인 조직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이번 사건 피해자는 과거에도 최소 2차례 비슷한 성추행을 당했지만 그때도 상관의 합의를 종용받았다고 한다. 군인권센터의 몇 년 전 조사에서는 여군의 90%가 '성범죄를 당해도 대응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드러나지 않는 성범죄 피해가 얼마나 될는지 알기 어렵다.
국방부가 매년 성폭력 피해 특별신고 기간을 운영하는 정도로 실태를 파악했다고 볼 수 없다. 2년 전 스포츠계를 대상으로 했던 것처럼 국가인권위원회 주도의 여군 전수조사가 필요하다. 피해가 발생해도 쉬쉬하고 넘어가려는 군 문화를 바꾸기 어렵다면 성범죄와 관련해 외부에 신고 체계를 만드는 것도 검토할 만하다. 가해자와 그 주변 동조자는 물론 지휘관까지 일벌백계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이런 사건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기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