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추진했던 북극권 석유 개발, 바이든에 막혔다

입력
2021.06.02 17:30
후보 시절 반대하던 개발 사업 전면 보류  
트럼프가 마무리한 환경영향평가 재시행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추진했던 북극권 석유 시추 사업에 제동을 걸었다. 내무부의 재검토 완료 시까지 일단 사업을 보류했다. 법적 절차 등을 재검토하겠다는 것인데 후보 시절부터 북극 석유 개발에 강력 반대했던 바이든 대통령의 입장을 생각하면 백지화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 내무부는 1일(현지시간) 알래스카주(州) 북극권국립야생동물보호구역(ANWR)의 석유 · 천연가스 개발 사업을 전면 보류한다고 밝혔다. 허가 과정에서 법적 문제는 없었는지 검토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트럼프 정부에서 마쳤던 환경영향평가도 다시 실시하기로 했다.

미국 내에서 가장 자연이 잘 보존된 ANWR는 그 면적이 7만6,890㎢(1,900만 에이커)로, 서울의 127배가 넘는 규모를 자랑한다. 북극곰, 카리부 같은 멸종위기종 등 총 200종이 넘는 동물의 터전이다. 1960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처음 지정한 후 지미 카터 대통령이 1980년 그 범위를 지금의 규모로 확대했다.

개발 사업의 불을 당긴 건 트럼프 전 대통령이었다. 2017년 공화당 주도로 연방정부 수익을 위해 시추권을 판매할 수 있도록 세법을 개정하더니 개발 반대론자인 바이든 대통령 당선 후인 지난해 말에는 환경영향평가와 개발업체 입찰까지 서둘러 마무리지었다. '해안 지역의 150만 에이커(6,070㎢)는 의회 동의와 환경영향평가 결과에 따라 개발할 수 있다'는 관련법 단서 조항을 근거로 삼았다. 당시 입찰에는 중소기업 단 2곳이 맞붙었다. 기후변화가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 금융권에서도 주요 의제로 떠오르면서 북극 개발 사업에 금융권 자금을 조달받기 어려워지자 주요 석유기업들이 돌아섰기 때문이다.

내무부 발표에 반응은 확연히 엇갈렸다. 미 환경단체들은 일제히 환영의사를 밝혔다. 개발을 문제 삼아 트럼프 전 행정부를 고소했던 환경단체 '알래스카 와일드리그'는 같은 날 성명을 내고 "이 사업은 법적 과정도 부족했다"고 비판했다. 마이클 제라드 컬럼비아로스쿨 기후변화법센터 소장은 "주요 화석연료 사업에 반대하는 바이든 대통령의 입장을 확고히 한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마이크 던리비 알래스카 주지사(공화당)는 "알래스카 경제에 대한 공격"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같은 당인 리사 머카우스키 알래스카주 상원의원도 "이미 국회를 통과한 사안"이라며 "바이든 정부의 보류 결정은 연방법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바이든 정부의 입장은 확고해 개발사업이 지속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지나 매카시 백악관 기후보좌관은 이날 "바이든 대통령은 ANWR가 미국의 문화적·경제적 초석이라고 믿고 있다"며 "전 행정부 결정으로 이 특별한 곳(ANWR)의 성격이 영원히 바뀔 수도 있었다"고 개발 중단 의지를 드러냈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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