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연초 조선노동당 규약(당규약)을 개정하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 겸 당 총비서 바로 아래 '제1비서' 직책을 신설한 것으로 확인됐다. '권력 2인자' 자리를 공식화한 셈이다. 자리의 주인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김 총비서의 최측근 실세인 조용원 당 조직비서가 맡거나, 후계구도가 명확해질 때까지 공석으로 유지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1일 한국일보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1월 8차 노동당 대회에서 당규약을 개정하면서 제3장 '당의 중앙조직' 제26항에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제1비서, 비서를 선거한다"는 문구를 추가했다. 7명의 비서 가운데 으뜸가는 '2인자'를 세우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규약은 “당중앙위 제1비서는 조선노동당 총비서의 대리인이다”라고 명시했다. 전당을 조직·영도하는 당 수반의 업무를 대리할 정도로 권한이 크고 신뢰받는 자리임을 시사한다.
아직 해당 직책과 인물이 북한 공식 매체 보도로 확인된 적은 없다. 다만 현시점에서 김 총비서가 2인자 자리에 앉힐만한 측근은 조용원이 유일하다는 분석이 대체적이다. 오랜 기간 김 총비서를 '그림자 수행'해 온 조용원은 8차 당대회 때 조직비서 겸 당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기념 열병식에선 김여정·현송월 당 부부장과 함께 김 총비서의 선물로 추정되는 가죽 롱코트까지 입고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아직 공석일 가능성도 있다. 직함의 상징성이 너무 커서다. 김 총비서는 집권 초기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영원한 당 총비서'로 추대하고, 2016년 5월까지 직접 제1비서 직함을 사용했다. 이 직책을 부활시킨 이유가 행정 목적이 아닌 후계 작업의 일환이라면 '로열 패밀리'를 위해 비워둘 수 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당 부부장으로 잠시 강등된 동생 김여정을 추후 이 자리에 앉힐지도 모른다"면서 "제1비서의 역할과 위상은 시간을 두고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은 김정일 시대 핵심 키워드였던 '선군정치' 표현도 당규약 서문에서 삭제했다. 군은 당의 영도를 받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인민대중제일주의 정치를 사회주의 기본정치 방식으로 내세웠다. 선대와 구별되는 김정은식 애민정치, 노동당 중심의 국정운영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대목으로 볼 수 있다.
'당의 당면 목적'은 기존 "민족해방민주주의 혁명 과업 수행"에서 "사회의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발전 실현"으로 대체했다. 본문 중 ‘당원의 의무’에선 “조국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적극 투쟁해야 한다”는 대목이 아예 삭제됐다. 이를 두고 북한이 '적화통일론'을 사실상 폐기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다만 “남조선에서 미제의 침략무력을 철거시키고 남조선에 대한 미국의 정치군사적 지배를 종국적으로 청산한다” 등 주한미군 철수 주장으로 해석되는 문구는 표현만 일부 수정해 남겨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