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피해 여군 죽음 내몬 軍 제정신인가

입력
2021.06.0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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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여성 중사가 선임 중사에게 성추행 당한 뒤 이를 신고했지만 군의 조직적인 사건 은폐와 회유에 시달리다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해 충격을 주고 있다. 피해자 유족에 따르면 지난 3월 초 충남 서산의 한 공군부대 부사관 회식 뒤 사건이 발생하자 피해자가 바로 신고했는데도 관련자들은 피해자 가해자 분리나 상부 보고 후 진상 조사는커녕 "없던 일로 해달라"며 합의 종용에 바빴다고 한다.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피해자는 결국 부대 전출을 요청했고 중압감을 견디지 못해 두 달 휴가에서 복귀한 지 나흘 만에 옮긴 부대에서 비극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다. 그날이 혼인 신고일이었고 마지막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가족들에게 보냈다니 고인의 참담한 심정이 어느 정도였을지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성추행이 벌어진 뒤 3개월 가까이 "군은 무엇을 했느냐"며 "살 수 있는 사람을 죽게 만든 건 군"이라는 군 인권센터 지적이 틀리지 않다.

국방부 장관이 1일 책임을 통감한다며 진상 조사를 지시하고 공군총장이 진실 규명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지만 사후약방문이다. 그마저 효과가 있을지도 의심스럽다. 2013년 강원 육군 부대에서 성추행 당한 여성 대위가 숨진 사건이 난 뒤 국방부는 훈령을 고쳐 성 관련 군기 위반 사건 가해자는 물론 묵인, 방조자도 무관용 엄벌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성폭력 예방 교육도 강화했다. 하지만 이후로도 군내 성 관련 사건은 매년 1,000건 이상으로 별로 개선되지 않았다.

이번 사건은 상급자가 피해자 신고를 받고도 지휘관에게 보고하지 않았고 피해자 가족이 항의하기 전까지 수사도 진행되지 않았다. 그 사이 피해자는 가해자와 그 동조 집단에 노출돼 사건 은폐와 합의 압박에 시달렸다고 한다. 군에서 성폭력 대응 수칙을 갖추고 교육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묻고 싶다. 상명하복식 규율과 폐쇄적인 조직 문화에만 기대 인권에 무감각한 군의 낡은 체질이 뿌리부터 바뀌지 않고서는 백날 규정 만들고 이를 가르쳐야 헛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