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브렉시트·저출산'… '3중고'에 학생 없어 울상짓는 英 초등학교

입력
2021.06.01 07:00
실직·고물가로 이주민·원주민 런던 이탈 급증
학생 수 감소로 학교 재정난 심화… 폐교까지

지구촌 어디에서나 ‘초등학생’은 매우 ‘귀한 몸’이다. 세계적인 저출산 현상으로 학령 인구가 크게 줄어든 탓이다. 한국도 그렇지만 영국, 그중에서도 특히 런던은 상황이 심각하다. 가뜩이나 학생 수가 자연 감소하는 마당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Brexitㆍ브렉시트)로 런던을 떠나는, 이른바 ‘엑소더스(대탈출)’ 행렬까지 이어지면서 도시가 썰렁해졌다. 급기야 학생이 없어 문 닫는 학교도 나왔다.

30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영국에서 올해 9월 시작되는 새 학년도에 공립초등학교 입학 신청을 한 학생 수는 전년보다 0.3% 줄었다. 초등학교 입학생이 감소한 건 2010년 이후 처음이다. 런던은 감소 폭이 훨씬 크다. 올 1월 입학 신청 마감일 기준으로 6.7% 줄었다. 이 수치를 환산하면 6,546명에 달한다고 FT는 분석했다. 런던의회는 “낮은 출산율이 학생 수에 점차 영향을 미칠 거라 예상은 했지만, 당장 다음 학년도부터 학생 수가 이렇게 급격히 감소할 줄은 몰랐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런던 32개 자치구 대부분에서 입학 신청 건수가 줄었다. 두 자릿수 감소세를 보인 지역도 있다. 해링게이는 14.1%, 엔필드는 13.5%, 해머스미스와 풀럼은 10.2%가 각각 줄었다. 캠든과 타워햄리츠에선 초등학교 3곳이 학생 수 감소로 폐교를 앞두고 있다. 지방도 아닌 런던 같은 세계적 대도시에선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교육 당국은 이탈 주민이 폭증한 데서 원인을 찾는다. 영국 통계청 경제통계센터 분석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가 악화하면서 일자리를 잃고 영국을 등진 외국인 노동자가 지난해 3분기까지 13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중 런던에서만 절반이 넘는 70만명이 떠났다. 올해 초 브렉시트 발효 이후 EU 출신 이주민들의 영국 거주 및 노동의 자유가 사라진 것도 탈(脫)영국을 부추겼다. 당연히 아이들도 덩달아 줄었다.

런던 이탈 현상은 이주민에 한정되지 않는다. 런던 토박이 주민들마저도 팍팍해진 살림살이에 너도나도 이삿짐을 싸고 있다. 잇단 고강도 봉쇄 조치로 소득이 불안정해진 데다 인지세(취득세) 감면으로 집값이 폭등하면서 가뜩이나 물가 높기로 악명 높은 런던에서 더는 버틸 수 없게 된 것이다.

학생 수 감소는 학교 재정에도 영향을 미쳐 교육의 질을 저하시킬 거란 우려를 낳고 있다. 런던의회는 내년도 삭감되는 학교 운영금이 3,400만파운드(약 534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교육 당국은 폐교와 학급 통ㆍ폐합 최소화를 약속했지만 일부 학교에선 교직원 감축 등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의회 관계자는 “교실을 학생으로 채울 수 없다면 교직원이나 다른 운영 비용을 줄이는 방법을 강구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각 자치구들은 어떻게든 학교를 살려보려고 분투 중이다. 캠든 구의회는 “저출산뿐 아니라 런던의 고물가도 문제”라며 “중대한 재정난에 대처하기 위해 지역 학교들과 대책을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표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