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는 위(胃)로 행군한다”는 전쟁에서 식량 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 간파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한 말이다. 류성룡 선생도 ‘징비록’에서 군량(軍糧) 지원에 관하여 누차 언급하셨다. ‘삼국지’에서 조조와 제갈량도 군량 때문에 웃고 울지 않았던가.
어쩌면 무기보다 중요한 것이 군량이라고 볼 수 있다. 태평양전쟁 시기, 일제 패망의 주역으로 지목되는 바람에 일본에서는 극도의 혐오 대상으로 꼽히지만, 한국의 밀리터리 마니아들에게는 ‘숨은 조선의 독립운동가’라고 불리는 세 사람의 지휘관이 있다. ‘스기야마 하지메’, ‘도미나가 교지’, ‘무타구치 렌야’이다.
그중 모든 이들이 입을 모아 최고로 치는 인물이 ‘무타구치 렌야’이다. 그의 개념 있는 활약은 무수하지만, 압권은 병사들을 굶겨 죽이는 능력이었다. 자료에 따라 수치는 다르지만, 그가 지휘한 버마-인도 국경의 ‘임팔 전투’에서 3만 내지 4만 정도의 일본군이 굶어 죽었다. 렌야는 식량 보급을 요구하는 병사들에게 “일본인은 원래 초식동물”이라며 정글에 있는 풀을 먹으면 된다고 말했다. 보급 이야기를 꺼내면 엉뚱하게도 충성심이 부족하다고 질책했다고도 한다. 이런 자가 별을 달고 전장을 누볐으니 일제가 망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일본 특유의 파벌과 학연 등의 후광 효과로 파면은커녕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패전 후에는 전범으로 기소되었으나 중장(中將)이라는 계급에 비해 가벼운 처벌만을 받았다. 연합군이 태평양전쟁에서 보여준 혁혁한 그의 공로(?)를 인정해 주었기 때문이다.
로이드 E. 이스트만(Lloyd E. Eastman)의 명저 ‘장개석은 왜 패하였는가(원제 Seeds of Destruction)’에는 1947년 당시, 국부군(국민당 군대)의 모습에 대한 장개석의 탄식이 실려 있다.
“장교들은 병사들에게 식량, 피복, 의료 혜택 등을 적절하게 공여하지 않고 부하에게 배당된 보급품을 착복하기까지 한다. 장교로서 마땅히 취해야 할 자세는 병사와 같은 것을 먹고, 같은 것을 입고, 병사들의 병영에서 함께 기거하는 일이다. 공산군의 장교들은 이미 이 일을 철저하게 실시하고 있다. 그들의 경우 장교와 병사 간에는 생활 처우의 차이가 없고 단지 기능의 차이밖에 없다. 이와 대조적으로 국부군의 경우 병사들에 대한 대우로 봐서는 반란을 일으키거나 도망가지 않는 것만도 다행일 정도다.”
국민당이 왜 공산당에 패배했는지에 대한 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대한민국 군대에 장교의 착복 행위가 있을 리 없으니 그 부분은 건너가고, 장교와 사병이 같이 숙식을 하면 병사들이 불편할 테니 그럴 필요도 없겠지만, 병사들 먹는 것은 상급자들이 세심하게 신경 써야 한다. 든든히 먹어야 눈빛도 살아나고 총을 잡은 손에도 힘이 들어가는 법이다.
최근 문제가 된 부대의 부실한 급식 사진을 보면서 자식을 군대에 보낸 부모들 억장이 다 무너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흐지부지 넘어가고, 둘러대며 덮으려고 하지 말고 원인을 발본색원해야 하는데 잘 될지 의구심이 든다.
그나마 위안을 준 것은, 해병대의 급식 사진이었다. 장교들이 사병을 아끼고 배려하는 마음이 사진 밖으로 넘쳐흐른다. “역시 해병대!”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이적행위라는 것이 특별히 따로 있겠는가. 우리 병사들에게 부실한 식사를 제공하는 행위가 바로 적을 돕는 짓이다.
손자가 말했다. “장수가 병사를 사랑하는 자식처럼 대하면 병사들은 장수와 함께 죽을 각오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