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 간의 ‘핵무기 현대화’ 경쟁에 불이 붙을 조짐이다. 중국의 군사적 부상을 억제하기 위해 잠수함·폭격기·미사일 등 핵전력의 업그레이드에 31조 원을 쏟아붓겠다는 미국의 내년 투자 계획이 공개되면서다. 당장 “우리도 가만있을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대응 요구가 중국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28일(현지시간) 미 국방부가 공개한 2022회계연도(2021년 10월 1일~2022년 9월 30일) 국방예산안을 보면 핵무기 현대화 분야에 277억 달러(30조8,800억 원)가 투입된다. 구체적으로 △탄도미사일 탑재 잠수함에 50억 달러(5조5,700억 원) △스텔스 폭격기 B-21에 30억 달러(3조3,400억 원) △오래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대체하는 사업인 ‘지상기반전략억지’에 26억 달러(2조8,900억 원) 등이 배정됐다.
연구·개발(R&D) 예산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인 1,120억 달러(124조8,800억 원)가 책정됐다. 이 예산은 △육·해·공 운송수단 무인화 △사이버 △5세대 유도 에너지 △마이크로칩 △인공지능 △극초음속 기술 등에 사용된다. ICBM 등 적국 공격 미사일 시스템에 대비한 육·해·공 미사일 방어 분야에는 204억 달러(22조7,400억 원)가, 인도·태평양 지역 레이더·위성·미사일 시스템을 위한 태평양억지구상(PDI)에는 51억 달러(5조6,800억 원)가 각각 들어간다.
명분상 대(對)북한용인 미사일 방어 외에는 대부분 타깃이 중국이다. 중국의 군사적 부상을 억제하고 중국과의 국방 분야 경쟁에서 기술적 우위를 유지하는 게 예산 투입의 핵심 목적이라는 평가다. 다만 예산안 규모 증가 폭은 조 바이든 행정부 들어 다소 둔화했다. 국방부 예산 7,150억 달러(797조2,200억 원)는 전년보다 1.6% 증가한 금액이지만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감안하면 실질적으로 0.6% 줄었다는 게 블룸버그통신 설명이다. 전임 도널드 트럼프 정부 때는 국방비가 매년 꾸준히 3~5% 확대됐다. 내년도 전체 국방예산안은 7,529억 달러(839조4,800억 원) 규모다.
가뜩이나 열세인 미국과의 전력 격차가 더 벌어진다면 중국 입장에서는 재앙이다. 중국 군사전문가 쑹중핑(宋忠平)은 29일 자국 관영 글로벌타임스 인터뷰에서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현대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SLBM이야말로 미국의 핵공격을 억제하고 보복 공격까지 가할 수 있는 수단이라면서다. 미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ICBM 둥펑(DF)-41을 더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하는 전문가도 있다.
필요한 건 역시 돈이다. 한 전문가는 “중국은 수년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를 1.3%로 유지했는데 이는 세계 평균(2.6%)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라며 “세계 최대 국방비 지출국인 미국은 최근 몇 년간 중국의 4배를 국방비로 썼다”고 했다.
대결 구도를 만드는 쪽은 미국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28일 버지니아주(州) 햄프턴 소재 랭리-유스티스 공군기지 연설에서 중국이 권위주의 국가라는 점을 부각하며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중국이 2035년 이전에 미국을 패배시킬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고 말했다. 추격하는 중국에 맞서려면 국방 등 각 분야에서 미국이 경쟁력을 더 키워야 한다고 독려하려는 취지다. 31일은 한국의 현충일 격인 ‘메모리얼 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