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100년 전인 1921년 5월 31일 미국 중남부 오클라호마주(州) 털사 그린우드지역. 일부 흑인과 백인의 다툼 후 ‘블랙 월스트리트’로 불리던 부유한 흑인 거주지역에 백인 폭도들이 들이닥쳐 사람들을 죽이고 불을 질렀다. ‘KKK(큐 클럭스 클랜)’ 같은 백인우월주의자들이 공격을 주도했고, 털사의 백인 경찰까지 가세했다. 19세 흑인 남성 딕 로랜드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17세 백인 여성을 폭행했다는 주장에서 촉발된 비극이었다.
1박 2일간 이어진 사태로 약 100~300명의 흑인이 죽고, 35개 블록이 불에 타 수천 명의 흑인이 집과 일터를 잃었다. 미국의 부끄러운 인종 갈등 역사 ‘털사 인종 학살(Tulsa Race Massacre)’ 얘기다.
인종 학살 100주년을 맞아 미국 전역에서 추모와 반성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흑백 갈등은 여전하고 반성과 화해는 부족하다는 지적도 계속된다.
미 AP 통신은 “인종 학살 후 100년이 됐지만 흑인 불신은 여전하다”고 전했다. 털사의 경찰서장은 이제 흑인이고, 2013년 경찰이 공식 사과까지 했지만 흑인들의 마음을 다 얻지는 못했다. 실제로 2018년 여론조사에선 흑인 거주자의 18%만이 경찰을 신뢰한다고 답했다. 털사 평등지수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0년 흑인 청소년이 백인 청소년보다 경찰에 체포될 가능성이 3배, 흑인 성인은 백인 성인에 비해 2.54배 이상 높았다. 법 집행기관과 흑인 공동체 간 신뢰가 없다는 현지 흑인들의 불만도 이어지는 상황이다.
역사를 감추려고 했던 오클라호마 주정부의 잘못도 문제다. 현지에서는 1997년 폭력조사위원회가 구성되기 전까지 이 학살은 공식 논의가 없었다. 주 공립학교에서는 학살 대신 ‘털사 인종 폭동’으로 불렀다. 미 USA투데이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83%가 대학 입학 전 학교에서 털사 인종 학살을 배우지 못했다. 61%는 미디어를 통해 이 사안을 처음 접했다고 답했다. 주 교육부가 털사 인종 학살을 공립학교에서 가르치라는 지침을 내린 시점은 겨우 2002년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다음 달 1일(현지시간) 현장을 찾아 추모연설을 하고, 지금 101세와 107세인 학살 당시 생존자를 직접 만날 예정이다.
그러나 과거사 단죄와 진정한 참회가 부족해 미국에서 비슷한 과오가 되풀이된다는 지적도 많다. 매니샤 신하 미 코네티컷대 미국사 교수는 AP에 “미국인들이 과거로부터 배우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왜냐하면 미국 민주주의의 본질과 매개변수 간 대화가 계속되고 있고, 진짜로 기나긴 일이라는 점을 깨닫지 않는 한 오늘날의 정치 분열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트럼피즘’과 1월 워싱턴 국회의사당 난입 사태의 뿌리도 털사 인종 학살 같은 부끄러운 과거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 아닐까. 물론 남의 나라 미국만의 일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