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티머스 '1조 펀드사기' 길 터준 금융사들 결국 재판행

입력
2021.05.30 09:00
검찰, 하나은행·NH증권 및 직원들 불구속 기소
옵티머스 펀드 돌려막기 가담하고 방조한 혐의
자산운용업계 "각 기관 의무 저버려 사기 커져"

1조원대 피해를 낳은 옵티머스자산운용(옵티머스) 펀드사기 사건과 관련해 김재현(51) 옵티머스 대표를 비롯한 주요 금융기관 인사들이 무더기로 재판에 넘겨졌다. 펀드 판매사(NH투자증권)ㆍ수탁사(하나은행)ㆍ투자사(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들이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의무를 지키지 않는 사이, 옵티머스는 대범한 사기 행각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옵티머스 돌려막기 도운 대형은행

30일 검찰 등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부장 주민철)는 지난 28일 △김 대표와 옵티머스 △ 하나은행과 수탁업무 담당 부장 조모(52)씨 등 2명 △NH투자증권과 펀드기획 담당 부장 김모(51)씨 등 3명을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하나은행 및 직원 2명에게 업무상 배임을, 조씨에겐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를 방조한 혐의까지 더해 기소했다. 옵티머스 펀드에 투자를 결정한 한국전파진흥원 전 기금운용본부장 최모(59)씨는 업무방해 혐의로 역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에 따르면 하나은행 직원들은 법을 어기면서까지 옵티머스의 ‘돌려막기’에 가담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나은행은 수탁사로서 △옵티머스 지시에 따라 펀드자금으로 자산을 사들여 보관(수탁)해주고 △자산에서 수익이 발생하면 이를 펀드 판매사에게 보내 환매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하지만 2018년 8~12월 사이에 옵티머스가 하나은행에 사들이라고 한 ‘옵티머스 특수목적법인(SPC)의 사모채권’에선 수익이 발생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검찰 조사 결과 이들은 이 기간 동안 총 3차례에 걸쳐 다른 자산운용사 펀드자금 92억원을 빼내 펀드 투자자들에게 환매될 수 있도록 해준 것으로 파악됐다. 수탁사는 펀드마다 계좌를 엄격하게 따로 관리하고 절대 운용사 지시 없이 임의로 펀드 자금을 사용해선 안된다. 김재현 대표는 자본시장법상 수탁사와 직접 거래해선 안 되는데도, 다른 자산운용사 자금을 채우기 위해 개인 돈과 옵티머스 운용 자금 24억원 상당을 하나은행에 건네기도 했다.

비정상 운용 알고도 또 수탁계약

검찰은 나아가 하나은행 수탁영업부장 조씨가 지난해 5월 옵티머스와 다시 수탁계약을 맺는 점에 주목했다. 앞서 다른 자산운용사 자금에 손을 대야 할 만큼, 옵티머스 투자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걸 알았는데도 조씨가 또 수탁 활동을 계속해 옵티머스가 사기 펀드를 팔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해줬기 때문이다. 검찰은 조씨가 옵티머스의 사기를 방조했다고 판단했고, 이로 인해 발생한 사기 금액만 143억원에 달한다고 봤다.

펀드 판매사인 NH투자증권 직원들이 옵티머스에게 ‘투자금 보전’을 요구한 점도 조사됐다. 옵티머스가 투자자들에게 약속한 수익률 3.5%를 지킬 수 없게 되자, NH투자증권 직원들은 2019년 12월부터 2020년 6월까지 8차례에 걸쳐 옵티머스에게 약 1억2,000만원을 달라고 한 것이다. 자본시장법상 손실 보전은 엄격히 금지돼 있다. 심지어 옵티머스는 수탁사인 하나은행과 별도 수수료 계약을 맺어 하나은행을 통해 NH투자증권으로 돈을 보냈다. 수탁사가 판매사에게 정상적으로 환매자금을 돌려주는 모양새를 만든 것이다.

검찰은 공공기관인 한국전파진흥원 전 기금운용본부장 최씨가 옵티머스 펀드가 확정 상품인 것처럼 절차를 꾸며 내부 기금이 투자될 수 있도록 한 점도 파악했다.

옵티머스 사기 행각을 지켜본 한 자산운용사 고위관계자는 “하나은행이 다른 운용사 돈을 내어주지 않고, NH투자증권이 투자금을 보전 받지 않고, 한국전파진흥원 기금운용본부장이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 옵티머스를 의심했다면, 옵티머스 사기 행각이 조금이라도 일찍 드러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나은행 측은 "다른 펀드 자금을 이용하지 않았고 옵티머스 펀드 투자자들은 정상적으로 환매대금을 지급 받았다"며 "직원이 옵티머스의 사기를 방조하지도 않았다. 하나은행도 사기 피해자"라고 반박했다.

이상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