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여년 만에…독일, 옛 식민지 나미비아 학살 인정

입력
2021.05.28 22:38
나미비아 재건 위해 30년간 1.5조원 규모 기금

독일이 옛 식민지 나미비아에서 대량학살 범죄를 110여년 만에 자인했다. 피해 보상 명목으로 나미비아 재건을 위해 30년간 11억유로(약 1조5,000억원) 기금을 조성키로 했다.

독일과 나미비아는 27일(현지시간) 독일이 1904∼1908년 당시 식민지였던 나미비아 헤레로·나마족을 집단학살한 사실을 인정하고 11억유로를 내놓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은 "독일은 1904∼1908년 제국주의 시절 나미비아에서 행한 만행을 공식적으로 대량학살이라고 명할 것"이라면서 "나미비아와 피해자들의 후손들에게 용서를 빌겠다"고 말했다. 협상의 목적에 대해선 "피해자들을 기리며 진정한 화해를 위한 공동의 길을 찾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합의는 2015년부터 진행된 양국 정부 간 '독일 식민지 지배에 대한 미래 지향적 재평가' 논의 결과물이다. 양측은 2016년 9월부터 9차례에 걸쳐 협상을 했다. 독일은 △나미비아 농업개혁, 배수, 직업교육 등 분야의 개발 지원(10억5,000만유로) 기금 조성 △화해재단 설립(5,000만유로)을 약속했다.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은 나미비아 의회에서 열리는 기념식에서 공식적으로 용서를 빌 예정이다.

독일 제국은 1884∼1915년 나미비아를 식민지로 지배하면서 원주민에 대해 여러 차례 잔혹 행위를 했다. 독일군(식민지보호부대)은 1904∼1908년 헤레로족 6만5,000∼8만명, 나마족을 1만∼2만명 학살한 것으로 역사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는 이번 합의를 '매우 상징적'이라며 "속죄의 길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냉철한 평을 내렸다. 무엇보다 피해 당사자인 헤레로·나마족이 아닌 나미비아 정부와 대화가 이뤄진 탓에 헤레로·나마족 일각에서는 이번 합의안을 독일의 홍보용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피해 보상을 기금 조성 방식으로 진행한 점도 비난을 받았다. 정작 이들이 요구했던 독일 박물관·도서관이 보관 중인 헤레로·나마족 유골 수만 점과 예술품 반환은 해결되지 않았다.

진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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