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ㆍ11 전당대회를 앞둔 국민의힘에 ‘5060세대 남성 중심의 기득권 교체’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28일 당대표 예비경선(컷오프)에서 '36세 0선'인 이준석 전 최고위원이 중진 의원 5명과 초·재선 의원 2명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연공서열을 중시하는 정치권에선 그야말로 이변이다.
이 전 최고위원은 논쟁적 인물이다. 최근 노골적 안티 페미니즘 발언과 젠더 갈라치기로 인지도를 급속히 키웠다. 정치를 시작한 지 10년째에 방송 활동을 열심히 했으니, 그다지 참신한 인물도 아니다. 그런 그가 컷오프에서 당심과 민심의 선택을 골고루 받아 승리한 건 '정치에도 젊은 얼굴과 다른 문법이 필요하다'는 시대적 요구가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컷오프는 당원 여론조사 50%와 일반국민 여론조사 50%를 합산하는 방식이었다. 이 전 최고위원은 41%의 종합 득표율을 기록해 나경원 전 의원(29%), 주호영 의원(15%), 홍문표 의원(5%), 조경태 의원(4%)을 여유롭게 따돌렸다. 초선 기수론으로 초반 기세를 올렸던 김웅 의원과 김은혜 의원, 3선의 윤영석 의원은 탈락했다.
이 전 최고위원은 일반국민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지지(51%)를 받았다. 나 전 의원(26%)의 2배에 달하는 득표였다.
대구·경북(TK) 출신과 고령층이 다수인 당원들의 선택은 다를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그러나 당심도 이 전 최고위원에게 쏠렸다. 당원 여론조사에서 이 전 최고위원과 나 전 의원의 지지율은 각각 31%와 32%였다. 대구가 지역구인 주 의원은 20%를 얻는 데 그쳤다.
컷오프 전 여론조사에서 불기 시작한 '이준석 바람'은 '돌풍'이 됐다. 보수적인 국민의힘 당원들이 이 전 최고위원에게 몰표를 준 건 고도의 전략적 선택이다. 국민의힘의 지상 과제는 5년 만의 정권 교체.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4·7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하고도 우왕좌왕하는 사이 '쇄신'과 '개혁'을 선점한다면 국민의힘이 정권을 되찾을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최근 일주일간 TK에서 선거운동을 한 이 전 최고위원은 27일 페이스북에 "장년층은 '대구는 이제 걱정 말고 다른 지역에 가라고 하신다'"고 썼다. TK가 그를 쇄신의 담지자로 보는 분위기가 실제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당을 다시 일으키지도, 박 전 대통령을 구하지도 못하는 국민의힘 주류에 대한 실망이 누적된 결과다. 국민의힘 주류는 대대로 '50대 이상 명망가 남성'이었다.
여야를 막론한 기득 정치권력에겐 날카로운 경고등이 켜졌다. '정치를 바꿔야 한다. 정치를 바꿀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든 밀어주겠다'는 매서운 민심이 이번 컷오프에서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 전 최고위원이 최근 뜬 방식은 도널드 전 트럼프 대통령을 닮은 측면이 있다. 이 전 최고위원의 선전이 정치권에 '포퓰리즘이 이긴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가능성도 있다.
다음 달 11일 실시되는 본경선은 이 전 최고위원의 외로운 경쟁이 될 전망이다. 김웅ㆍ김은혜 의원이 탈락하면서 이 전 최고위원은 50~70대 중진 후보들과 1 대 4의 싸움을 하게 됐다.
이에 중진 후보들의 합종연횡이 변수로 등장했다. 후보 단일화는 '이준석 대세론'을 흔들 수 있는 유일한 카드로 꼽힌다. 컷오프에서 나 전 의원과 주 의원이 얻은 종합 득표율을 합산하면 44%로, 이 후보가 얻은 41%를 넘어선다. 본경선은 당원 여론조사 70%와 일반 여론조사 30%를 더하는 방식으로, 당심의 영향력이 더 크다. 컷오프 당원 여론조사 지지율은 이 전 최고위원이 31%, 나 전 의원과 주 의원의 지지율 합산치가 52%였다.
이 전 최고위원은 28일 대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후보 단일화를 개의치 않는다"면서도 "한국 정치사에서 원칙과 철학이 없는 단일화는 배척받았다"고 말했다.
당심이 본경선에서도 이 전 최고위원을 선택할지도 중대 변수다. 차기 당대표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 최재형 감사원장,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등 제3지대 대선주자 영입, 안철수 대표가 이끄는 국민의당과의 합당 등 난제를 풀고, 대선 당일까지 당내 대선 후보를 여당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정치 실전 경험이 별로 없는 이 전 최고위원에게 그런 역할을 맡기는 것은 모험에 가깝다. 이에 국민의힘 당원들은 이 전 최고위원의 '쇄신'이냐, 나 전 의원과 주 의원의 '안정'이냐 사이에서 고민할 것이다.
오히려 밴드왜건 효과(1위 후보를 더 지지하는 심리)로 ‘이준석 바람’이 더 거세질 것이란 관측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