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외계에 신호를 보낸다. 지구 밖에도 생명체가 있을지 궁금해서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의 신호를 오인한다면. 전혀 다른 문명이기에 서로를 이해할 방도를 찾지 못한다면. 무지가 공포를 부르고, 공포가 인류 절멸로 이어진다면. 생각하고 싶지 않은 가정들이다. 왓챠 드라마 ‘우주전쟁’은 끔찍한 상상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프랑스 산간지역 우주 관측소에서 괴이한 전파가 수신된다. 지구에는 없던 파동이다. 외계생명체에게 보낸 신호에 대한 응답이었다. 인류는 화들짝 놀란다. 지적 생명체의 존재를 확인했다는 경이보다 두려움이 더 크다. 대책을 마련해야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와중에 외계인의 공격이 시작된다. 유성 같은 비행물체가 세계 주요 도시에 떨어진다. 사람들은 어찌 대비할지 모르는데, 외계인은 자기장으로 인류를 공격한다. 우연하게 또는 의도를 가지고 지하나 물 속, 방공호 등에 몸을 숨긴 소수만 살아남는다.
생존자들마저 삶이 험난하다. 외계인들은 살아남은 자들을 사냥한다. 생존자들은 도망치고 숨으며 엷은 희망을 품는다. 헤어진 가족을 만날 수 있다고, 언젠가 외계인을 내몰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드라마는 크게 세 집단으로 나눠 이야기를 전개한다. 뇌과학자 빌(가브리엘 번)과 그의 전처 헬렌(엘리자베스 맥거번), 에밀리(데이지 에드거-존스)의 가족, 수단에서 밀입국자 카림 등이다. 이들은 영국 런던을 헤매다 우연히 집단을 형성하고, 함께 도피 생활을 한다. 빌은 외계인의 생물학적 특징을 분석하려 한다. 앞을 볼 수 없는 에밀리는 외계인과 텔레파시가 통하는 신기한 능력을 지녔다.
다른 두 집단은 프랑스에 있다. 하나는 우주 관측소 연구원 캐서린(레아 드러커)과 그를 보호하게 된 군인 일행이다. 또 하나는 프랑스 출장 왔다가 발이 묶인 에밀리의 아버지 조너선(스티븐 캠벨 무어)이 길에서 만난 여인 클로에 등과 형성한 그룹이다.
이질적인 사람들끼리 이뤄진 세 집단은 내부 갈등을 겪으며 하나가 되어간다. 외계인이란 위협에서 살아남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세 집단은 유사가족 같이 생활한다. 드라마는 여기에 실제 가족끼리의 사랑과 다툼을 포갠다. 절멸의 위기는 가족을 하나로 묶기도 하지만, 갈등의 골을 깊게 만들기도 한다.
생존자들은 외계인의 위협 속에 계속 이런 물음표를 던진다. 그들은 왜 우리를 죽이려 하는가. 대화를 하려는 시도조차 없이 무작정 공격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하기만 하다. 카림이 해답에 대한 열쇠를 제시한다. 인류 역시 아무런 이유 없이 인류를 죽여왔고, 앞으로도 무단으로 죽일 것이라고. 수단에서 내전과 집단학살을 경험한 카림은 보복의 악순환에 진저리를 치다 새 삶을 도모하기 위해 영국에 밀입국했다.
드라마는 외계인의 공격 이유를 어렴풋이 알려준다. 미지의 지적 존재가 자신들을 공격하기 전에 선제적 행동에 나선 거 아니냐는 암시를 던진다. 소통 불가에서 온 두려움이 무도한 학살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드라마는 겉보기엔 인류와 외계인의 대치로 보이지만, 사실 인류와 인류에 대한 이야기다.
※권장지수: ★★★☆(★ 5개 만점, ☆은 반개)
H. G. 웰스의 고전 동명 소설(1898)을 바탕으로 했다. 소설은 라디오극으로, 드라마로, 영화로 여러 차례 만들어졌다. 외계인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이 10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아서다. ‘우주전쟁’은 대중문화산업에 화수분 같은 원작인 셈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동명 영화(2005)가 외계인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했다면, 15년(이 드라마는 지난해 영국에서 첫 방송됐다)이 지난 후 만들어진 드라마가 묘사한 외계생명체는 좀 심심하다. 충분히 공포를 가질 만한 형상과 움직임이지만, 시신경을 압도하지는 않는다.
드라마는 외계생명체의 덩치나 기이한 모습이 아니라 몰살 위기에 처한 인류의 심리에 집중한다. 어디서 나타날지 모를 괴생명체에 대한 두려움, 공격의 이유를 알 수 없어 더 커진 공포, 가족에 대한 애증을 섞어 시청자의 감정에 파동을 일으키려 한다. 8부작인데, 결말 없이 끝난다. 시즌2는 이달 17일부터 영국에서 방영 중이다. 궁금증을 해소하기까지 기다림이 필요하다.
※로튼 토마토 신선도 지수: 평론가 75%, 시청자 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