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은 드나드는 곳에 달아 놓은 시설이다. 오늘 하루, 우리는 얼마나 많은 문을 열고 닫았을까? 세상 모든 말이 다 그러하듯, 문의 의미도 다양하고 심오하다. 우선 ‘문을 열다’는 영업을 시작하는 것을, ‘문을 닫다’는 경영하던 일을 그만두는 것을 뜻한다. 또한 서울 사대문 안과 같이 ‘문안’과 ‘문밖’은 주요 공간에 경계를 긋는 말이다. 누구에게나 유독 높게 여겨지는 ‘문턱’ 앞에서 흘린 눈물이 있는 것처럼, 때로 문이 인생에서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나 고비를 의미하기도 한다.
문은 종류에 따라 이름도 참 많다. 밖에서 잡아당겨 여는 ‘당길문’, 열고 닫는 ‘여닫이문’, 위아래로 오르내려서 여닫는 ‘내리닫이문’, 접어서 여닫는 ‘접문’이 그러하다. 예전 기차의 창문은 붙박이로 된 위짝에다가 아래짝을 올려붙였다. 혹 걸림쇠가 어긋나기라도 하면 벼락같이 아래로 닫힌다고 ‘벼락닫이’라고 했는데, 화들짝 놀란 이의 심장 소리를 그대로 전달해 준다.
그중에 실은 문이지만 비정상적인 문을 이르는 말도 있다. 뒤로 난 ‘뒷문’, 대문 한편에 붙은 ‘쪽문’, 방과 방 사이에 난 ‘샛문’, 따로 낸 작은 ‘곁문’ 등은 실제로 그러한 문일 수도 있지만 특별한 의미를 담을 때가 더 많다. 어떤 문제를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해결하는 길을 빗대므로 주로 부정적인 상황에서 쓰인다. 그런데 이 말들을 부정적으로 여긴다는 것은 사회 구성원의 정의로운 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므로 오히려 ‘앞문’에 주목하지 않는 현상은 다행스럽다.
이 많은 문을 열고 닫는 도구가 곧 ‘문고리’다. 어릴 적 기억에, 할머니는 주무시기 전에 문고리에 낡은 숟가락 하나를 가로질러 꽂으셨다. 나무 문살에 창호지를 바른 작은 문이 무슨 힘이 있을까? 돌쩌귀와 고리 사이에 걸린 밥숟가락 하나는 안심 장치에 불과하다.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말은 개인의 이익을 위해 여럿이 잡을 문고리를 독점하는 말, 바로 ‘문고리 권력’이다. 이 말은 특히 권세가의 측근에서 문안으로 들어갈 힘을 보이는 것이다. 문이 그렇듯이 방문 고리도 누군가를 이어주기도 하고 단절시키기도 하므로 이 말은 시대를 막론하고 존재했던 것이리라. 그런데 최근에서야 ‘문고리’의 비유가 언론의 주목을 받은 것은 이 시대의 정신이 공정함을 향하고 있음을 알려 준다. ‘문을 연 사람이 바로 문을 닫은 사람’이란 속담처럼 원인에 따른 결과는 늘 있었다. 공익을 위해 쓰일 문과 문고리의 선한 힘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