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신뢰와 CCTV

입력
2021.05.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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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4년 전 갑작스레 췌장암 4기 진단을 받은 모친을 돌보기 위해 귀국, 모친이 사망할 때까지 두달 가까이 국내 대학병원, 동네병원, 약국 등 의료시스템을 경험한 신재규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임상약학과 교수. 모친의 투병을 지켜본 경험을 토대로 최근 펴낸 ‘한국인의 종합병원’에서 그는 정보를 독점한 의료인들이 환자와의 소통을 외면하는 한국의 의료 현실을 비판한다.

□ 이름 있는 대학병원을 찾았지만 그의 모친을 진단한 의사는 의무기록도 제대로 읽지 않았고, 환자가 무슨 약을 먹는지도 묻지 않았다. 환자와 가족이 받을 충격은 고려하지 않고 지극히 형식적으로 모친의 여명 선고(3개월)를 하는 의사 앞에서 신 교수는 ‘희망이 아니라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적었다. 낮은 수가 때문에 ‘3분 진료’를 할 수밖에 없는 의료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를 감안해도, 환자와 가족들이 의사로부터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하고 진료실을 나서는 건 문제라고 그는 지적한다.

□ 국회, 법원, 대기업 등 기관별 신뢰도 조사에선 의료기관이 늘 최상위권이다. 하지만 의료사고를 당하거나 행여 소송으로 진행될 경우 전혀 딴판이다. 환자(나 유가족)들은 의료진의 불투명한 설명방식과 병원의 방어적 태도로 이중, 삼중의 피해를 경험한다. 이는 개인적 좌절감을 넘어 사회 전반에 대한 내적 신뢰의 붕괴로 이어진다는 것이 의료 소송 연구자들의 공통된 결론이다.

□ 우리나라에선 연간 200만 건의 수술이 이뤄지고, 2,000건 안팎의 의료소송이 진행된다. 수술이 제대로 이뤄졌나 궁금해도 극심한 ‘정보 비대칭’ 상태에서, 을의 위치인 환자들로선 답답할 수밖에 없다. 국회에서 환자들의 정보 접근도를 높이고 환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수술실 CCTV 설치를 위한 의료법 개정이 다시 추진되고 있다. 관련 법안들이 상임위에서 논의조차 못됐던 19대, 20대와 달리 이번에는 상임위 심의와 공청회까지 열리는 등 다소 논의가 진전됐다. 의료계의 반발은 여전하다. “의사들을 감시하고 불신상태로 몰아넣는다” “의사와 간호사들을 범죄자 취급한다”는 게 반박 논리다. 반발에 앞서 환자들과의 소통으로 신뢰를 쌓는 일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이왕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