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 베이조스는 아마존의 개척자였나 약탈자였나 [Deep & wide]

입력
2021.06.02 11:00
24면
아마존CEO 퇴진 앞둔 제프 베이조스

편집자주

국내외 주요 흐름과 이슈들을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깊이 있는(deep) 지식과 폭넓은(wide) 시각으로 분석하는 심층 리포트입니다

"8억 원을 기부하고도 욕을 먹다니."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의 얘기다. 2020년 세계 최고 부자 랭킹 1위인 그가 호주 산불 구호자금으로 내놓은 이 기탁금은 그가 불과 30분 만에 벌어들이는 수입에 지나지 않는다. 하루 만에 자산이 15조 원 불어난 날도 있다(2020년 7월 20일). 그러다보니 8억 원을 쾌척해도 "그 정도 돈 갖고 뭘!"이란 반응이 나온다.

세계 부자 1위는 계속 바뀐다. 1위로 꼽힌다고 죄다 언론과 대중의 화제가 되지도 않는다. 그런데 왜 베이조스는 줄곧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까?

3분기가 되면 베이조스는 자신이 만든 아마존 제국의 CEO에서 물러난다. 과연 그는 어떤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갈 것인가. 늘 따라다녔던 논란에서 벗어날까, 아니면 또 다른 어떤 논란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창의 그리고 도전의 삶

"Go 1st!"

베이조스는 자신의 말마따나 대다수가 인터넷이 뭔지도 모르던 시절 일찍이 글로벌 온라인 쇼핑몰의 무한한 잠재력을 깨닫고 사업화에 성공했다. 고교 시절 우수한 성적으로 프린스턴 대학에 들어간 그는 물리학자가 되려다 두뇌의 한계를 절감하고 컴퓨터 공학으로 바꿔 오히려 대박을 친다. 양자역학을 잘해야만 창의적 삶을 사는 건 아니잖은가. 온라인 서점으로 출발한 아마존은 부침이 있었지만 종합쇼핑몰로 도약하며 오늘날 전 세계에 130만 명의 직원을 둔 넘버원 쇼핑 플랫폼이 되었다. 최근 MGM을 인수하여 OTT시장에서까지 아마존의 지배력을 키울 기세다.

아마존으로 번 돈의 상당 부분을 미래가 불확실한 우주화물운송사업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것도 그의 창의적 도전정신을 잘 보여준다. 그렇다고 그의 시선이 거대한 장기 비전에만 쏠려 있지는 않다. 요즘 국내에도 도입된 무인점포의 원형인 ‘아마존 Go'나 증강현실로 머리 손질 결과를 미리 가늠하는 ’아마존 살롱‘(미용실)은 그의 도전이 사업 말단까지 연결되어 있음을 일러준다. 이슈 마케팅도 빼놓을 수 없다. 올해 베이조스의 우주화물운송기업 '블루오리진'은 사상 최초로 우주관광 항공권을 경매에 부쳤다. 유인 로켓 탑승인원 6명 중 관광객은 1명뿐이니 수익보다는 이슈에 치중한 것.


제프 베이조스 vs. 일론 머스크

베이조스의 우주화물운송사업은 시류 편승이 아니다. 빌 게이츠는 IT산업의 선구자이지만 우주개발보다 기후변화 방지에 더 관심이 많다. 반면 베이조스는 우주공학과 미사일 방어시스템 전문가였던 외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려서부터 우주로의 진출을 꿈꿨다. 일론 머스크와도 맞닿는 면이다. 둘 다 우주개발을 그저 이권이 큰 미래 사업으로만 보지 않고 가슴에 담고 있던 비전을 현실화하는 발판으로 삼았으니.


“인류가 우주를 식민 지배할 날을 꿈꾼다. 모두 떠나 지구를 거대한 국립공원으로 바꾸리라.”
제프 베이조스의 고교졸업식 졸업생 대표 연설에서


아쉽게도 블루오리진은 아직 동종업계 경쟁사인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에 밀린다. 발사체 재활용을 위한 재착륙 제어기술과 재활용 횟수에서부터 열세다. 스페이스X의 ‘팰콘’은 인공위성 궤도까지 올라가 선체를 수평으로 눕혀 화물전달 후 다시 수직으로 세워 지상에 착륙한다. 블루오리진의 ‘뉴 셰퍼드’는 그보다 낮은 대기권과 우주의 경계를 오가는 준궤도 로켓이다. 미항공우주국(NASA)은 2024년 인간을 다시 달에 보낼 '아르테미스' 계획의 달착륙선 사업자로 스페이스X를 선정했다. 스페이스X는 로켓과 유인 캡슐을 재사용하나 블루오리진은 모듈 구성이 복잡하고 비용도 거의 2배라서다.

우주개발의 최종 비전도 온도차가 있다. 머스크가 화성 식민화를 궁극 목표로 삼는다면, 베이조스는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중공업시설을 모두 지구 궤도로 내보내고 지구를 청정지역으로 업그레이드하고자 한다. 이는 그의 기후변화 방지 운동과도 한데 맞물린다.

현재 민간우주개발업자에게 의미 있는 고객은 미 국방성과 NASA 정도라 달착륙선 사업에서의 배제는 당분간 블루오리진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베이조스가 지금처럼 아마존 주식을 매년 대거 팔아치우며 2024년까지 달에 유인우주선을 보내는 ‘블루문’ 프로젝트에서 성과를 낸다면 앞날의 우위는 섣불리 장담하기 어렵다. 민간우주개발사업은 여전히 걸음마 단계니까.

인정사정 없는 사업가

베이조스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관련 과학자와 운동가, NGO를 후원하는 100억 달러 규모의 ‘베이조스 어스 펀드’를 조성해 세계은행 기후변화 특사이자 세계자원연구소 회장이었던 앤드루 스티어를 CEO로 영입했다. 또한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해 현직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와 대립각을 세웠으며, 이혼 사유가 된 외도 탓에 유출된 본인의 성기 사진을 빌미로 모 잡지사의 협박을 받자 외려 이를 공개 논박하는 정면 돌파로 여론을 뒤집었다. 기부금도 벌이에 비해 턱없이 적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 절대 금액은 무시할 수 없는 규모다(머스크의 기부액은 베이조스의 50분의 1 수준이다).

아마존의 시장 독점적 지위는 영세 입점업체들이 일정 폭 할인이나 리베이트를 수용하지 않으면 추천항목에서 제외하거나 구매 버튼을 삭제해 매출에 타격을 주는 폐해를 낳았으나, 베이조스는 이를 ‘가젤 프로젝트’라 합리화했다. 맹수는 약한 놈부터 잡아먹는다는 적자생존 논리로, 아마존 시장점유율을 빠르게 늘렸으나 과도한 가격경쟁 유도로 시장을 교란한다는 비판도 받았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부의 창조’와 ‘부의 추출’을 구분한다. 부의 창조가 잉여가치의 전체 파이를 키운다면, 부의 추출은 타인을 착취해 파이 자체는 커지지 않고 빈부 격차만 키운다. 최저시급을 15달러로 올려 직원 복지에 신경 쓴다고 자화자찬하나 이는 베이조스가 일관되게 추구해온 무노조 경영 차원의 방어전술로도 비친다. 친구 아내와 바람을 피워 양쪽 가정 모두를 파탄으로 몰고 간 데 대해서도 세인의 시선이 곱지 않다.


제프 베이조스를 어떻게 평가할까

아마존을 떠나는 베이조스는 이제 블루 오리진과 워싱턴 포스트, 베이조스 어스 펀드 등에 전력투구한다. 특히 아마존이 캐시카우이면서도 레드오션인 만큼 블루오리진을 블루오션으로 키울 모양새다. 베이조스의 행보를 보면 한쪽 발이 양지를 밟는 사이 다른 발에 진흙이 엉겨붙는 형국이다. 하긴 인수합병한 회사만 100개가 넘고 130만 명의 아마존 직원을 먹여살린 이가 어찌 꽃길만 걸었으랴. ‘가젤 프로젝트’가 드리운 그늘을 기부와 자선사업으로 희석하려는 처세는 빌 게이츠와 겹친다.

세상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질수록 책임도 커지건만 역사상 위인들을 봐도 모순된 행적을 남긴 예가 많다. 만년의 뉴튼은 영국 조폐국 장관을 지내며 아일랜드에서 유통되는 불량 주화의 동 함유량이 정상이라며 검사 결과를 조작했고, 페미니즘 옹호를 입에 달고 산 H. G. 웰즈는 여성운동가들을 두루 임신만 시키고 전혀 돌보지 않았다. 베이조스 또한 비전 제시와 별개로 그 성취 수단을 고를 때는 힘의 논리를 선호한다. 기후변화를 막고자 공해산업을 우주궤도로 추방하자면서 경쟁사들과 입점업체들을 대하는 방식과 굴곡진 개인사는 본받을 점이 없다.

빛과 그늘은 따로 떼어놓을 수 없다. 베이조스의 사례는 자본주의 경제의 정점에 오른 이의 양면성을 잘 보여준다. 베이조스는 CEO 퇴임사에서 아마존이야말로 미래에 가장 적합하게 포지셔닝된 회사라 정의했다. 궁금하다. 그가 그린 미래가 얼마나 많은 이들의 미래와 겹쳐질지.

고장원 과학칼럼니스트·SF작가

과학기술과 인류사회의 미래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다. ‘SF란 무엇인가?’ ‘SF의 법칙’ ‘특이점 시대의 인간과 인공지능’ 등 SF와 과학 관련 저서를 다수 펴냈고 여러 매체에 과학 칼럼을 연재해왔다. 서울벤처정보통신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를 지낸 후 제일기획 PD을 거쳐 SK·CJ그룹에서 IT기반 콘텐츠 사업기획을 담당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