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차기 지도부 선출을 위한 1차 전당대회가 열렸던 25일. 오전 10시부터 이어진 비전 발표가 끝나고 일부 중진들은 소리소문 없이 장례식장으로 이동했다. 이들을 비롯해 서울성모병원에는 이틀 동안 야권 인사들의 조문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상주는 모친상을 당한 이영수 전 KMDC 회장. 장례식장에서 만난 이 전 회장 측근은 "워낙 하신 일이 많아서"라며 정치인들의 조문 이유를 설명했다.
장례 첫날인 25일 오후 7시 30분쯤 빈소를 찾은 첫 중진 인사는 나경원 전 의원이었다. 나 전 의원은 유족들을 만난 뒤 빈소에서 국민의힘 당직자 및 당원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오후 10시에는 주호영 의원이 도착해 이 전 회장을 위로했다.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뿐만이 아니었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대표와 권성동 의원, 이혜훈 전 의원, 이철규 의원 등 야권 중진들이 잇따라 장례식장을 찾았다.
이 전 회장 측은 조문객이 몰려오자 장례 둘째 날은 빈소를 더 큰 곳으로 옮겼다. 26일 오후 2시쯤 홍준표 의원이 빈소를 찾았다. 전날 부인이 조문했지만 직접 장례식장을 방문해 유족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홍 의원이 돌아간 직후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도착했다. 두 사람은 정치적으로 상극이라, 마주쳤다면 어색한 장면이 연출될 뻔했다. 상황을 지켜보던 이 전 회장 측근은 "발걸음이 엇갈린 게 천만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권영세 의원과 이은재 전 의원, 강효상 전 의원, 정미경 전 의원의 조문이 끝난 뒤, 저녁 7시 30분쯤 '의외의 인물'인 허경영 국가혁명당 대표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이 전 회장 측근은 "허 대표와 이 전 회장이 인연을 맺은 건 20년도 더 된 일이고, 그 이후로도 꾸준히 연락을 주고 받은 사이다"라고 귀띔했다. 이 전 회장과 동서지간인 안대희 전 대법관도 이날 빈소를 찾았다.
방문객 못지않게 빈소를 가득 메운 것은 조화였다. 빈소 입구는 물론이고 내부까지 빈틈 없이 덮은 거물급 인사들의 '조화 세례'에 지나가던 조문객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상주의 정체를 궁금해했다. 정진석 윤영석 조해진 성일종 윤한홍 김정재 박성중 송석준 추경호 김석기 유상범 의원 등 현직 국회의원은 물론이고 원희룡 제주도지사와 권영진 대구시장 등 광역단체장, 정갑윤 홍문종 주광덕 이언주 전 의원 등 여의도를 떠난 정치인들도 빈소 복도에 이름을 드러냈다. 이 전 회장의 고향 친구들은 정치인도 아닌 김창룡 경찰청장의 조화가 눈에 띄자 놀라기도 했다.
이 전 회장은 당직을 맡은 적도 없어 대중에겐 낯선 이름이지만, 정치판에선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뿐, 그는 20년 이상 유력 정치인과 보수정당을 지원해온 '그늘 속 실세'로 통하기 때문이다. 대구 출신 사업가인 이 전 회장은 김영삼 정부 때부터 사조직을 통해 보수 진영 외곽조직을 이끌어왔다. 그는 자신이 만든 기업인 KMDC가 미얀마 가스개발 사업권을 따내는 과정에서 이명박 정부의 특혜를 입었다는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기도 했다.
장례 둘째 날 빈소를 찾은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에게 이 전 회장에 대해 묻자 "대중과 공중전을 하는 젊은 정치인들과 달리, 조직을 구성하는 데 탁월하신 분"이라고 답했다. 안대희 전 대법관과 가까워 이날 빈소 방문이 점쳐지기도 했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오지 않았다. 이 전 회장 측근은 "윤 전 총장은 워낙 조문에 신중한 사람이라 오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정치를 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6월 말이나 7월 초에는 접촉해오지 않겠냐"고 전망했다.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를 앞둔 시점이라 이날 빈소에선 자연스럽게 경선 전망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조직을 동원한 옛날 정치에 익숙한 사람들이 많이 모인 탓인지 이준석 전 최고위원에 대해선 대체로 호의적으로 평가하지 않았다. 발인을 5시간 앞둔 27일 오전 1시쯤, 조문객 발길이 뜸해지자 이 전 회장과 마주 앉을 수 있었다. 야권 정치인들이 자신을 찾는 이유를 묻자, 그는 "머리로 정치하지 않았고 현장에서 가슴으로 만났기 때문"이라며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정치는 결국 공감을 얻기 힘들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