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신록이 깃들 계절이지만 '푸른산'의 자취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벌거벗은 산허리엔 땅을 깎고 또 깎으면서 생긴 층층 계단이 등고선처럼 자리 잡았습니다. 자원을 파헤치고 운반하는 임시도로는 봉우리까지 치고 올라가 '하트'를 만들어 놓았죠. 세상에 이보다 처참한 하트가 또 있을까요.
지난 20일 강원 영월군 한반도면의 석회암 광산 일대의 모습입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시멘트 제조업체 'S'사가 원료인 석회암을 채굴해 오던 곳이죠. 60여 년의 긴 채굴이 끝나고 폐광에 이르렀지만, 만신창이가 된 지금의 모습조차 자연에 돌려줄 수 없습니다. 업체가 폐광 복구 대신 대규모 폐기물 매립장 조성을 강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업체는 16년간 560만 톤의 건설폐기물 및 사업장 배출 시설계 폐기물 매립장을 1,700억 원을 들여 조성한다는 계획입니다. 규모도 엄청납니다. 매립장 면적이 축구장 25배에 달하다 보니, 드론을 500m 상공까지 올려도 한 앵글에 다 들어오지 않습니다.
영월뿐 아니라 충북 제천, 단양, 충주 등 인근 주민들이 크게 반발하는 건 당연하겠죠. 최성호 산업폐기물 매립장 반대 영월·제천·단양·충주 대책위 부집행위원장은 "(업체는) 채굴이 끝났으면 폐광 신고 후 복구해야 맞는데, 절차를 무시하고 주민 의견도 수렴하지 않은 채 복구를 미루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동공(석회암 지대에서 자연적으로 지반이 녹아 생긴 빈 동굴)이 많고 위치 파악이 힘든 석회암 지대라 침출수로 인한 지하수 오염이 어디서 발생할지 모른다"면서 "지하수가 오염될 경우 충북 북동부는 물론 수도권 식수원까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대해 업체 관계자는 "매립장 사업으로 1지구(사진)에 대한 채광을 잠정 중단했을 뿐, 만일에 대비해 고품질의 석회석을 남겨뒀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폐광 상태는 아니다"라고 밝혔습니다. 복구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죠. 그는 또 "침출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3중, 4중으로 안전하게 차수시설을 설치해 환경문제를 정리한 후 공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도 했습니다.
환경 오염을 우려하는 지역 주민과 문제없다는 업체의 주장은 팽팽합니다. 업체가 주민 의견을 수렴하는 공청회까지 열었지만, 주민들이 만족할 만한 명확한 해법을 내놓지 않아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볼 때, 일회용품 같은 생활폐기물이나 산업폐기물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국토 어딘가에는 폐기물 매립장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수십 년간 파헤친 폐광에 각종 폐기물을 채우는 방법 말고는 없는 걸까요?
인간과 자연은 서로 공존하며 살아야 하지만, 인간은 개발이라는 명목하에 소중한 자연을 파괴해 왔습니다. 전문가들은 이제라도 더 이상 업체나 지자체에 맡겨놓지 말고 정부가 직접 나서 주민과 업체가 충분한 대화를 통해 합의점을 찾고 자연과의 공존을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유엔이 정한 '환경의 날(6월 5일)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민둥산 봉우리에 선명한 하트가 공존의 상징이 되는 날도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