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납치' 체포된 벨라루스 反정부 인사, 고문에 허위 자백?

입력
2021.05.2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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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영방송, 프라타세비치 자백 담은 동영상 공개
가족 "코 부러진 것 같다"... 전문가도 "고문 시사"

벨라루스 당국에 의해 ‘공중납치’ 체포를 당한 반(反)정부 인사가 시위를 조직했다고 자백하는 동영상이 공개됐다. 하지만 타박상과 찰과상 흔적 등 고문 정황이 드러나면서 허위 자백 논란이 커지고 있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25일(현지시간) 벨라루스 국영방송이 전날 오후 “언론인 라만 프라타세비치가 민스크시에서 집단 폭동을 조직한 것을 인정한다”는 내용을 담은 29초 분량의 동영상을 공개했다고 보도했다. 프라타세비치는 영상에서 “나는 수사에 협조하고 민스크 제1교도소에 있다”면서 “건강상 문제는 없고 교정직원들의 태도는 정중하고 합법적이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가족과 지지자들은 그가 고문 내지 학대를 받아 거짓 진술을 강요 받았다고 주장했다. 프라타세비치의 아버지는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아들의) 코 모양이 바뀌었다. 코가 부러진 것 같다”며 “평소 말투도 아니며 매우 긴장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또 어머니는 그가 말한 교도소에서 아들을 찾을 수 없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국제인권단체 앰네스티의 알렉산드르 아르테미예프 대변인은 “프라타세비치의 얼굴에서 찰과상과 타박상 흔적이 보인다”면서 “당국이 자백 내용을 기록하기 전에 고문을 했다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WP는 “2018년 미 국무부 인권보고서를 보면 벨라루스는 정치범에게 자백을 강요하기 위해 협박과 강압을 행사하는 것으로 유명한 나라”라고 전했다. 고문 정황이 충분하다는 얘기다.

이날 프라타세비치와 함께 체포됐던 여자친구 소피아 사페가의 영상도 공개됐는데 역시 강요에 의한 자백이 의심된다.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사페가는 두 손을 모은 채 떨리는 눈빛으로 “자신이 벨라루스 경찰 신상 정보를 공개하는 텔레그램 채널 작성자”라고 시인했다.

서방국가들은 벨라루스의 항공기 강제착륙 사건과 관련, 본격적인 제재에 나섰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이날 “논의가 진행 중”이라며 제재를 기정사실화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도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등 모든 가용한 국제기구를 통한 제재 조치를 지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역시 “유럽연합(EU) 회원국 정상과 정부 수반들이 벨라루스에 대한 제재를 확대하고 개인 및 단체를 블랙리스트에 추가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김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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