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LPGA 나서는 ‘의족 골퍼’ 한정원 “마음껏 즐기겠다”

입력
2021.05.25 17:30
19면
28일 개막 E1 채리티 오픈 출전


“지난해 비장애인과 함께하는 대회에 도전하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1년 만에 현실이 되니 꿈만 같습니다. 언제 또 올지 모르는 기회인 만큼 마음껏 즐기려고요.”

‘의족 골퍼’ 한정원(51)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 당당히 도전장을 내민다. 28일 경기 이천시 사우스스프링스 컨트리클럽(파72)에서 열리는 E1 채리티 오픈에 초청 선수로 출전하게 되면서다. 8년 전 교통사고로 왼쪽 다리를 잃은 뒤 절망하지 않고 부단한 재활 노력 끝에 희망을 향한 샷을 날릴 수 있게 됐다.

한씨는 25일 본보와 전화인터뷰에서 “내게 과분한 도전 기회를 준 KLPGA와 후원사에 너무 감사하다”며 “프로 선수들과 함께 경기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닐 테지만, 일단 프로 선수들의 플레이에 방해가 되지 않는 게 가장 큰 목표”라고 했다.

2018년 장애인 세계골프선수권에서 우승을 차지한 바 있는 한씨가 골프와 인연을 맺은 건 약 6년 전인 2015년이다. 경기 기흥고등학교 체육교사인 그는 교통사고 이전까지는 철인3종경기 출전을 꿈꿀 정도로 모든 운동을 가리지 않고 즐겼지만, 교통사고 이후 비장애인과 함께 할 수 있는 스포츠를 찾다 보니 골프에 눈이 갔다고 한다.

한씨는 “2015년에 처음 필드에 나가 18홀을 다 소화한 뒤 감격에 겨워 18번 홀 깃대를 부여잡고 엉엉 운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이듬해 일본에서 열린 장애인 골프대회에 출전해 세계 의족 골퍼들의 기량을 직접 목격한 뒤부터 출근 전후 훈련하면서 실력을 가다듬었다”고 했다. 지난 3월엔 여자골프 유망주를 발굴하는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 수준급 실력으로 본선에 올라 잔잔한 감동을 줬다.


덜컥 초청을 받고 나니 걱정부터 앞선 건 사실이다. 한씨는 “젊은 선수들에겐 엄마뻘인 나이라서 최근엔 샷 감각 점검보다 걷기 운동과 체력훈련에 비중을 뒀다”며 웃었다. 평소 라운드 때는 80타 안팎의 스코어를 기록하지만, 이번 대회 목표를 자동 컷 탈락 기준인 88타 아래로 설정해 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티샷을 치고 나서부터 계속 걸어야 해 막판에 집중력이 흔들릴까 걱정이지만, 당당히 1,2라운드를 완주하는 게 1차 목표”라고 했다.

가족들이 준 ‘긍정의 힘’은 이번 대회를 준비하는 원동력이다. 남편과 자녀가 “걱정하기 보다 마음껏 즐기고 오라”고 해 준 말이 큰 위안이 됐단다. 항상 웃으며 경기 하는 장하나(29)가 이번 대회 ‘롤 모델’이다. 기꺼이 캐디를 맡아준 ‘골프 스승’ 진대근 프로와의 동행도 큰 힘이 된다고 한다.

또 다른 목표는 기흥고 제자들과 약속한 ‘버디 세리머니’다. 선생님이 ‘중계가 되는’ 큰 대회에 나간다고 하니, 아이들이 요구도 꽤나 구체적이다. 한씨는 “성적엔 연연하지 않을 생각이지만, 제자들이 버디를 하면 꼭 세리머니를 해달라고 해서 약속을 했다”며 “매 홀 파를 목표로 경기할 각오지만, 버디 기회가 온다면 놓치지 않고 싶다”고 다짐했다. 향후 세미 프로 자격을 따내 시니어 투어에서 비장애인 선수들과 당당히 경기하겠단 꿈을 꾸는 한씨는 “아이들에게 끊임 없이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형준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