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의 배터리 동맹이 가시화하면서 국내 배터리 소재 업계도 미국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양극재·전해액·전지박 등 전기차용 배터리 주요 소재를 만드는 국내 기업들 다수가 미국 내 생산 기지 건설을 검토하고 있다.
먼저 LG에너지솔루션과 제너럴모터스(GM)의 합작사인 얼티엄셀즈에 양극재와 음극재를 공급하기로 한 포스코케미칼은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려 미국을 비롯한 해외 배터리 제조 공장 인근에 양극재 공장 설립을 저울질하고 있다. 특히 LG와 GM이 미국 오하이오주에 건설 중인 1공장에 이어 테네시주에 2공장을 짓겠다고 밝힌 만큼 미국에 공장을 짓는 방안이 유력한 것으로 전망된다.
SK이노베이션에 양극재를 공급하고 있는 에코프로비엠 역시 미국 진출을 타진 중이다. 에코프로비엠은 지난해 11월 이미 미국 법인을 설립, 미국 진출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전해액 생산 업계 움직임도 분주하다. 동화기업의 배터리 소재 자회사인 동화일렉트로라이트는 SK이노베이션 공장이 있는 조지아주에 전해액 생산 공장 건설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엔켐은 SK이노베이션 미국 조지아 1공장 양산 계획에 맞춰 현지 진출 계획을 세우고, 9월부터 연간 2만 톤 규모의 미국 공장 가동에 들어간다.
음극재의 원료 중 하나인 전지박을 생산하는 일진머티리얼즈, SK넥실리스, 솔루스첨단소재 등도 미국 투자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소재회사들이 앞다퉈 미국 시장 진출을 타진하고 있는 것은 주요 고객사인 K배터리 업체들의 생산 거점이 미국에서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어서다.
업계에 따르면 이미 미국의 주요 완성차 업체와 손을 잡은 LG와 SK는 물론 삼성SDI 역시 미국에 배터리셀 생산 공장 건설을 타진 중이다. 삼성SDI는 미시간주에 배터리팩 공장을 가동하고 있지만, 아직 배터리셀을 생산하고 있지는 않다. 삼성SDI는 지난달 미국 전기차 스타트업인 '리비안'과 배터리 공급 계약을 맺은 바 있다.
고정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향후 한국 업체들이 미국에서 생산한 전기차용 배터리가 미국 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은 2025년 60% 수준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다른 이유는 미국 정부가 역내 의무생산 규정을 강화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 7월 발효된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AMCA)에 따라 2023년까지 전기차 핵심 부품의 85% 이상을 미국 현지에서 생산한 제품으로 채워야만 무관세 혜택을 받기 때문이다. 한국·중국·유럽 등에서 생산한 배터리 소재 등이 많아 의무 비율을 채우지 못하면 미국에서 생산한 전기차에도 관세가 부과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미국 시장 진출에 대해 제대로 된 손익계산서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시각도 제기된다. 미국 시장의 성장 잠재력에 이견은 없지만, 실질적인 사업성에 대해선 보다 면밀한 진단이 필요하다는 지적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이 한국과 손잡고 전기차 산업 육성에 나선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라면서도 "미국은 인건비를 비롯한 모든 비용이 중국이나 유럽의 생산기지인 헝가리·폴란드 등에 비해 월등히 높기 때문에 아무리 선점 효과를 누린다 하더라도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지 못하면 득보다 실이 클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