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열릴 예정이던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자명예훼손 사건 항소심 재판이 또다시 연기됐다. 지난 10일 '피고인 전두환'이 불출석해 한 차례 미뤄진 데 이어 두 번째다. 이번엔 항소법원이 공판 기일을 잡고도 소환장을 발송하지 않아 재판 진행이 무산됐다. 5·18유족들과 광주 시민들 사이에선 "이런 황당한 재판이 어디 있냐"는 비판이 나왔다. 전 전 대통령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을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를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한 혐의로 지난해 11월 30일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항소한 상태다.
광주지법 형사1부(부장 김재근)는 이날 오후 전 전 대통령에 대한 항소심 2회 공판을 진행하려고 했지만 개정(開廷)하지 못했다. 피고인에 대한 소환장이 송달되지 않아서다. 재판부는 이날 "피고인에게 소환장이 송달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며 "공식적으로 재판을 진행할 수 없게 돼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재판부는 이에 따라 2회 공판 기일을 다음달 14일 오후 2시로 다시 잡았다.
광주지법 관계자는 "업무상 착오로 인해 소환장 발송이 누락된 사실을 오늘 아침에야 인지했다"며 "다음 기일에는 적법하게 소환장을 고지해서 재판 진행할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예정됐던 2회 공판 기일에도 전 전 대통령은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그는 앞서 10일 열렸던 1회 공판 기일에 불출석한 뒤 변호인 정주교 변호사를 통해 "24일로 연기된 공판 기일에도 불출석하겠다"고 예고했었다.
이날 항소법원의 실수로 전 전 대통령에 대한 결석(缺席)재판도 불투명해졌다. 결석재판은 항소법원의 소환을 받은 피고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계속해서 2회 이상 항소심 공판 기일에 불출석한 경우에 한해 허용된다. 이는 피고인의 해태(懈怠)에 의해 본인에 대한 변론권을 포기한 것으로 보는 일종의 제재 성격을 띠고 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재판부가 전 전 대통령이 두 번 연속 불출석한 이날 재판을 열어 변론까지 종결한 뒤 곧바로 선고 기일을 잡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실제 1회 공판 기일 당시 재판부는 "(연기된)기일에도 피고인이 불출석하면 그대로 피고인 출석 없이 재판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법원 측이 적법한 기일 소환 요건을 갖추지 못한 탓에 결석재판은 2회 공판 기일 이후 전 전 대통령이 2회 연속해서 불출석할 경우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정 변호사는 "다음 기일에도 전 전 대통령은 출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재판부가 검사와 변호인 측에 5·18 당시 헬기사격을 둘러싼 핵심 쟁점에 대해 다퉈달라고 하면서 향후 심리 계획을 밝혀 일부에선 "피고인 전두환에 대한 특혜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유족 추모(65)씨는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항소한 전두환이 스스로 출정하지 않아 변론권을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재판부가 공판을 계속하겠다는 의도를 나타낸 것은 그에게 불출석 상태에서 변론권을 보장해 주겠다는 것으로 특혜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