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열렸던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의 결과를 놓고 다양한 평가가 나올 것이다. 여당은 성과 부풀리기에, 반대로 야당은 약점 찾기에 치중하여 이런저런 말을 쏟아낼 것으로 보인다.
북한 핵문제나 미사일 사거리 제한 철폐, 미국과 중국의 대결과정에서 균형 잡기 등 국방이나 외교·안보 측면은 제외하고 경제나 통상에 국한한다면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결과는 한마디로 현금을 건네주고 대신 준 현금보다 더 큰 액수의 '어음'을 받아 온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삼성, SK, 현대 등 우리나라 대기업이 44조 원에 이르는 대미 투자를 약속한 대신 미국은 한국군 55만 명에 대한 백신 제공과 삼성 바이오로직스의 모더나 백신 위탁생산을 약속한 것이 경제통상 분야의 구체적인 결과물이다.
더 큰 액수의 어음이란 백신의 위탁생산과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의약품에서 안정적 공급망 구축과 첨단기술 협력, 해외원전사업의 공동 참여 등 양국 간 경제협력을 통해 우리가 장기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이익이 44조 원을 넘을 수 있다는 점과 그러나 이러한 이익은 향후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고 활용하는가에 따라 구체화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함께 감안한 표현이다.
바이오·건강분야는 십수 년 전부터 전문가들 사이에서 차세대 고부가가치 산업의 대표로 지목된 대표 분야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노령화 추세를 감안하면 바이오건강분야의 중요성은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삼성이 반도체를 이을 주자의 하나로 오래전에 바이오건강분야를 선택해 집중 육성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번 정상회담은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우리 기업의 바이오, 건강관련 기술수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활용될 수 있다. 기후 변화와 무분별한 개발 등으로 향후 다양한 신종 바이러스의 출현 가능성을 고려할 때 백신 및 치료제의 개발 능력 보유에 따른 경제적 이익은 그 가치를 따지기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전기차 배터리 기술협력을 통해 전기차나 수소차의 미국 및 세계 시장 확보에도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으며, 이는 다시 5G나 6G의 공동개발을 통해 자율주행차 시장까지 이어질 수 있다. 차세대 핵심 고부가가치 산업에서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가 감히 넘볼 수 없는 확고한 자리매김을 하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그 가치는 수십조를 넘어선다.
그렇다면 문제는 이렇게 주어진 기회를 우리가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로 모아진다. 일단 정상회담의 결과를 구체화시키고 일회성 이벤트가 되지 않도록 제도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백신은 기술 이전 자체가 빠졌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관련 연구협력과 차세대 백신개발 협력은 좋은 시작점이다. 기업도 기술 개발과 협력을 위해 투자를 지속하고 정부도 과감히 관련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 기초 R&D(연구·개발)와 인력 육성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문재인 정부는 물론 차기 정부도 역점을 두고 추진해야 하는 국가적 과제이기도 하다.
바이든 대통령은 무엇을 얻었을까? 44조 원의 투자로 미국의 일자리가 수만 개 늘어나고 이는 곧 내년 10월 있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 정부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은 물론이다. 구체적이진 않아도 반도체 등 중요 부품 공급망에서의 동맹 결성도 평소 바이든 대통령이 강조해 온 바이다.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 행정부가 트럼프 행정부보다 노련한 가운데 보다 실속을 차릴 것이라는 세간의 평가가 틀리진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