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 독박' 알바하며 공황증세... "사지 멀쩡해도 괜찮지가 않아요"

입력
2021.05.2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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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삼키는 '코로나 블랙'] <상> 고립된 청년

“코로나19 전에는 이렇게 아프지 않았어요. 그런데 작년부터 지금까지 병원비만 100만 원 넘게 쓴 것 같아요. 두통과 근육통에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면 공황 증세가 나타나요. 병원에서도 뚜렷한 진단이 나오지 않으니 정신과를 가보라고만 하네요. 지금도 불면증이 심할 때마다 불안 증세 약을 가끔 먹어요”

대학원생 김하나(31·가명)씨의 별명은 자타공인 ‘에너자이저’. 예술이 전공인 김씨는 친구들과 작업실을 얻어 프리랜서로 활동했다. 학비 벌어가며 자신의 작품을 하려다보니 'N잡러 알바'는 필수였다. 그래서 구한 일자리 중 하나가 홍대 앞 한 클럽. 2017년부터 4년간 금, 토요일 밤에 출근해 다음 날 아침까지 일했다. 매표는 물론, 음료를 만들고 클럽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관리까지 도맡아 했다. 몸은 고됐지만, 그래도 주말에만 일해도 되는, 고정적 수입을 보장해주는 일자리였다.

'방역지침 총알받이'가 된 알바

코로나19는 모든 상황을 바꿨다. 지난해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 확진 사태가 결정타였다. 김씨는 '방역지침 준수의 최일선 총알받이'로 내몰렸다. 입장 때 큐알(QR)코드 등록, 체온 측정, 마스크 착용 등은 모두 김씨의 일이 됐다. 손님 체온이 37도를 넘어가도 술을 마신 손님들이 떼로 몰려와 ‘들여보내주면 안 되냐’ 실랑이를 벌이기 일쑤였고, 마스크 쓰고 주문받는다고 건방지다는 둥 불친절하다는 둥 별의 별 얘기를 다 들어야 했다.

손님은 여전히 왕이었으나, 사장은 '모르쇠'였고 '눈치껏 요령껏'만 내세웠다. 김씨는 “클럽 운영이 금지되자 사장은 춤은 안 되고 술만 팔겠다고 했다"며 "하지만 술 마시고 흥이 난 손님들은 춤을 추려 들었고, 구청 단속에 걸릴까 말리느라 신경줄이 끊어지는 줄 알았다”고 하소연했다.

견디다 못한 동료들은 "내가 뭔가 잘못된 일을 하는 것 같다"며 하나둘씩 일을 그만뒀다. 김씨도 더는 클럽에서 일하지 않는다. 고정 수입이 사라지면서 생활비도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다. 코로나 2년 차에 접어든 지금, 김씨는 스스로 "내가 많이 변했다"고 한다. “원래 제가 외부 활동량이 많은 사람이에요. 그런데 지난 1년간 너무 의기소침해졌어요. 친구들과도 ‘우리 내면의 많은 부분이 죽어가는 것 같다’고 이야기해요”

20대 중반 남성인 박영민(가명)씨도 지난해부터 아팠다. 귀에서 이명이 시작됐고, 종종 목 뒤쪽부터 어깨까지 굳는 증상이 생겼다. 병원에 가면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얘기만 들었다.

짚이는 부분은 있다. 박씨는 지난해 서울의 한 PC방에서 알바를 했다. 120석을 홀로 책임져야 했다. 코로나 상황이 위중해질수록 이런저런 방역지침은 많아졌고, 그걸 홀로 감당해내야 했다. “방역지침이 세밀화된다고 해서 정밀해지는 게 아니라 지키기가 더 애매해졌어요. 저는 120석을 홀로 감독해야 하는데 ‘밥이나 음료를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마스크를 쓰고 있어야 한다’는 지침이 오죠. 그런데 그걸 어떻게 저 혼자 다 판단할 수 있을까요?”

그러게 왜 그런 일을 해?... 하소연할 곳도 없다

그래도 종종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일일이 '마스크를 쓰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때마다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들 눈빛에 상처를 받았다. “말하자면, 전 방역지침의 최일선 집행자지만 권위는 전혀 없죠. 사장님이나 방역당국도 저를 보호해줄 수 있을까요?" 혹시 손님과 시비가 붙을까봐, 혹시 이상한 사람 만나 나에게 달려들까봐, 늘 두려움 속에서 일해야 했고, 그런 말을 해봐야 '왜 그런 데서 일해?' 같은 대답을 듣기 일쑤였다.

김씨와 박씨 같은 2030 청년은 숙련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서비스직에서 알바, 혹은 비정규직으로서 코로나19 사태를 맞았다. 방역지침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온전히 감당해야 했고, 휴·폐업 등으로 경제적 어려움에 내몰리기도 했다. 서울청년유니온은 지난해 11월, 코로나19로 실직한 2030 알바생 중 재취업에 성공한 경우는 13.7%에 그쳤다고 밝혔다. 코로나19로 인한 우울이나 분노, 즉 '코로나 블루'나 '코로나 레드'를 넘어 코로나로 인해 절망과 좌절에 다다른 '코로나 블랙'에 대한 우려가 더 커지고 있다.



1년 사이 2030 우울 위험군, 자살 생각 2배로

이는 실제 통계로도 확인된다. 지난 6일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1분기 코로나19 국민 정신건강 실태조사’에 따르면 1년 사이 2030 청년들의 '우울 위험군'과 '자살 생각 비율'이 2배 이상 크게 늘었다.

코로나19 초기였던 지난해 3월의 경우 20대의 우울 위험군 비율은 13.3%로 가장 낮았지만, 올해 3월엔 30.0%로 껑충 뛰어올랐다. 30대 역시 지난해 23.6%에서 올해 30.5%로 6.9%포인트 증가했다. 자살 생각 비율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3월 자살 생각 비율은 20대 10.1%, 30대 12.6%였으나 올해 3월 각각 22.5%, 21.9%로 2배 안팎으로 올랐다.

여기에는 코로나19 사태가 큰 영향을 끼쳤다. 올해 3월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는 서울 거주 19~34세 청년 2,011명을 대상으로 한 ‘2020 코로나19에 따른 청년층 이행경로 영향 연구’를 펴냈다. 이 연구를 보면 코로나19로 인한 노동환경이나 구직활동의 변화, 교육 훈련의 중단 및 축소, 주거 이전 같은 일들이 우울이나 자살 생각에 영향을 끼쳤다. 실제 코로나19로 일자리 등을 잃은 이들을 상대로 우울척도검사(CES-D)를 해봤더니 22~29점이 나왔다. CES-D 기준 21점 이상이면 중등도, 25점 이상이면 중증 우울증으로 판정받는다.



'주거 이전>임금미지급>구직비용 부담' 순서로 우울해

청년들의 우울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코로나19로 인한 가장 큰 부정적 경험은 '이사 등 주거 이전'이었다. 이 경우 우울점수는 무려 29.1점이었다. 다음으로 △임금연체·미지급(26.6점) △코로나로 인한 구직활동 비용 부담 증가(26.3점) △창업계획 차질(26.1점) △취업설명회, 채용박람회 등 연기 또는 취소(25.9점) △직업훈련, 자격증 시험 등 구직 준비 기회 감소(25.5점) △기업의 채용 감축(25.4점) 순이었다.

생활비가 연체되는 경우도 우울점수가 높았다. 응답자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29.2%가 코로나19와 관련해 월세·관리비·통신요금·각종 보험료 등의 생활비 연체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묘한 것은 코로나19와 무관하게 생활비가 밀렸으면 우울점수는 23.2점에 머물렀지만, 코로나19와 관련해 생활비가 연체됐을 경우 30.4점까지 치솟았다.

가장 무서운 건 '고립감'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경제적 어려움에다 심리적 위축까지 겹쳐 청년들이 고립되는 상황이다.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는 이들을 '고립청년'이라 부른다. 지원센터는 지난해 서울시가 지급하는 청년수당을 받은 청년들 2만 명 가운데 '주변에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이 없다' '식사를 챙기지 못하고 오랫동안 외출을 하지 않았다'고 대답한 107명에 대해 별도의 상담과 지원을 제공했다.

당시 상담을 진행한 안예슬 지원센터 사회참여팀장은 "청년 중에도 상대적으로 나이가 좀 많은 29~34세에 사회적 관계가 단절된 이들이 더 많았는데, 이는 20대 초반에서부터 고립 상태가 몇 년 이상 지속되면서 악화되고 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이들과의 상담을 진행하면서 가장 무서운 말은 '자살 암시'다. 실제 상담을 진행 중이던 한 청년에게서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끝내야 할 것 같아요’라는 문자 메시지를 받은 적도 있다. 일자리가 없어 알바 자리라도 구하기 위해 무단히 뛰어다니던 사람이었다. 부랴부랴 연락을 다시 취하고 경찰을 통해 안전을 확인한 뒤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복지 지원조차 부담스러워하는 청년들

고립청년들의 특징은 '말을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스스로의 상황에 대해 드러내거나 호소하거나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넘어 도와주겠다 해도 손사래 치기 일쑤다.

안 팀장은 “기존 복지 제도는 노인, 장애인, 아동처럼 흔히 말하는 '사회적 약자'를 중심으로 만들어져 있는데다, ‘사지 멀쩡한 청년이 왜’라고 되묻는 보통 사람들도 많다"며 "그러다 보니 고립청년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을 뿐더러, 복지기관과 연계해 도와주겠다 해도 무척 부담스러워한다”고 말했다.

자살 암시 문자를 보냈던 청년도 적절해 보이는 온갖 지원책을 다 제안해봤지만 '건강검진' 딱 하나만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모두 거절했다. 그나마 그 청년은 그래도 나은 편에 속한다. 고립청년 107명 가운데 대면상담에 응한 사람은 겨우 13명, 전화 상담이라도 한 사람은 60명이었고, 나머지 34명은 상담 자체를 거부했다. '뭐라도 다 해낼 수 있는 청년'이란 말은, 우리 사회가 어떻게든 도와주겠다 해도 쉽게 손을 내밀 수 없는 청년'이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셈이다.

청년에 대한 보편적 복지 고민해야

이 때문에 좀 더 과감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제안이다. 관점을 달리 해보면 아무리 상담에 응하지 않았다 해도 고립청년은 그나마 제도권 안에서 파악이나마 된 이들이다. 그렇지 않은 이들이 얼마나 더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안 팀장은 “누구나 짐작했지만 정확히 알 수 없었던 고립청년의 존재는, 어떻게 보면 ‘청년수당’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비로소 드러났다”며 “청년들에 대해서도 ‘아동수당’과 같은 보편적인 복지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코로나19 시국을 지나며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코로나19 상황이 장기화 국면으로 들어가면서 청년들 문제는 더 누적되고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지원센터도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사회로부터 단절되고 고립되는 청년이 증가할 수 있고, 이는 경력 공백 혹은 나쁜 일자리 경험, 노동시장에서 받는 차별 등의 문제로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취약 청년집단'을 장기적으로 추적, 모니터링하고 이에 근거한 '이행지원 패키지'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다면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박소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