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 커진 나를 위한 '작은 사치'...어디까지 해봤니?

입력
2021.05.22 16:00
코로나19로 통 커진 '보상 소비'
호텔에서 영국 문화 '애프터눈 티 세트' 인기
면세쇼핑 위한 '무착륙 관광비행' 이용자 늘어
사무실 같은 방에 이어 호텔같은 '욕조'의 변신
영국에선 정원에 '가든 오피스' 짓는 게 유행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우리의 씀씀이까지 좌지우지하고 있다. 해외여행 등이 막히면서 억눌렸던 소비는 '보상 심리'로 커진 지 오래다.

샤넬이나 에르메스 등 명품 매장이 문을 열기도 전에 줄을 서는 '오픈런' 광경은 이제 '흔한 일'이 됐다. 나를 위한 '작은 사치'의 기준이 달라지고 있는 셈이다.

비교적 저렴하게 구입하기 위해 드나드는 온라인몰에서조차 구매객 단가가 높아지고 있다. 이베이코리아에 따르면 이달 구매객 단가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 증가했다.

숙박업계도 최근 통 커진 소비 심리가 그대로 반영됐다. 호텔스닷컴이 3월 커플들이 찾는 주말 숙박시설 선호도 조사 결과, '5성급 특급 호텔'을 선택한 응답자가 42%로 가장 많았다고 밝혔다. 수영장이 딸린 '풀 빌라' 선택은 40%, 해변 리조트는 34%로 뒤를 이었다. 대부분 가격대가 높은 숙박 시설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호텔서 즐기는 7만원대 '애프터눈 티 세트'

"2, 3주 전에 예약해야 먹을 수 있어요."

직장인 김수연(가명·29)씨는 자신의 생일 파티를 위해 이달 초 서울의 5성급 한 호텔의 '애프터눈 티 세트'를 예약했다. 2인 기준 가격은 8만원. 이용 시간은 오후 2~5시까지다. 점심과 저녁 사이 시간대만 이용 가능해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다.

최근 호텔에서의 '작은 사치'로 꼽히는 건 애프터눈 티 즐기기다. 얼마 전까지 국내 호텔업계는 딸기 뷔페, 망고 빙수 등으로 봄, 여름 장사를 준비해왔다. 그러나 딸기라는 한정적 메뉴로 꾸린 딸기 뷔페는 1인당 5~7만 원대, 망고 빙수 한 그릇 가격은 무려 6만 원대인 호텔도 있다.

이에 비해 애프터눈 티 세트는 가성비가 좋은 편이다. 가격은 6~7만 원대가 대부분. 3단 접시에 담긴 케이크 등 디저트와 커피, 차뿐만 아니라 파스타, 빙수, 떡, 과자까지 대접하는 곳들이 많다. 각 호텔마다 패키지로 엮어 향수, 화장품 등도 서비스로 받을 수 있다.

심지어 자신의 취향에 맞는 곳을 선택할 수 있다. 고풍스런 찻잔과 접시 등 티웨어를 고를 수 있는가 하면, 야외에서 즐기는 애프터눈 티도 있다. 이 때문에 여성들에게 높은 호응을 얻고 있는 중이다.

사실 애프터 눈 티는 영국에서 생활의 여유를 추구하는 시간으로 불린다. 식사 시간 사이인 오후 3~5시경 다과와 차를 즐기며 휴식을 취하는, 영국 귀족 사회에서 시작된 생활 문화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애프터눈 티 세트는 20, 30대 젊은 층에서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한 호텔업계 관계자는 "MZ세대(1990년대 초~2000년대 출생한 세대)는 자신의 취향이나 만족도를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는 편"이라며 "단지 음식을 먹는 게 아니라 문화를 향유할 줄 아는 것"이라고 말했다.

무착륙 관광비행, 관광·명품쇼핑을 위한 선택

"누가 저런 걸 타나 했는데, 내가 타게 될 줄이야..."

3월 직장인 강수정(가명·31)씨는 아시아나 항공을 이용해 '무착륙 비행'을 다녀왔다. 처음부터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코로나19로 항공업계가 힘들어지면서 무착륙 비행이라는 상품을 내놨다는 소식을 언론을 통해 들었을 땐 "뭐 저런 게 다 있나" 했단다.

1년에 한 번씩 해외여행을 다녔던 그로서는 코로나19가 서러웠다. 결국 무착륙 비행에 도전했다. 19만 원에 이코노미석을 끊었다. 인천공항에서 출발해 부산을 지나 일본 후쿠오카 상공을 돈 뒤 제주도를 거쳐 돌아오는 코스였다.

가장 인상깊었던 건 가까이서 제주도를 감상한 것이었다고. 강씨는 "한라산 백록담의 절경이 아직도 가시지 않는다"며 2시간 가까운 여행을 만족해했다.

면세점 쇼핑을 목적으로 하는 무착륙 여행족도 있다. 해외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이들이 공항 혹은 기내, 인터넷 면세품을 소비하려는 것이다.

이들은 저가항공을 이용한 전략을 구사한다. 10만 원대 미만의 저가항공을 이용하고 최대한 면세 쇼핑에 집중하는 셈이다.

직장인 류미영(가명·35)씨는 지난달 무착륙 비행을 이용해 인천공항 에르메스 면세점에서 핸드백을 구입했다. 일반 매장에서는 소위 '오픈런' 아니면 살 수 없는 제품으로, 매장에 있으면 무조건 사야 하는 가방이기도 하다.

류씨는 "면세점에 사람도 없어서 여유있게 쇼핑했다"며 "해외여행 가서 쓸 돈을 면세 쇼핑에 소비한 것"이라고 말했다.

무착륙 비행도 세관 신고를 해야한다. 면세한도는 일반 해외여행 시 적용되는 것과 똑같이 1인당 600달러. 이를 초과 시 자신신고 해야 하며, 신고 불이행 시 납부세액의 40% 가산세가 붙거나 조사 처벌된다.

이 때문에 고가의 면세품은 관세로 인해 일반 매장과 가격 차이가 크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면세점에서 대기하지 않고 여유롭게 쇼핑할 수 있으며, 원하는 제품이 구비돼 있을 확률이 높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무착륙 비행 시행 초기만 해도 이용자가 1,000여명에 불과했지만, 지난달에는 2,600명을 넘어서 앞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다"고 말했다.

럭셔리의 상징이 욕조라고?

코로나19로 대대적인 변신을 한 곳은 바로 집이다. 재택 근무로 방 안은 사무실보다 더 포근하고 편안한 장소로 바뀌었다. 책상과 의자, 조명까지 인테리어에 돈을 아낌없이 투자하며 변화를 준 것이다.

이번에는 혼자 만의 시간이 가능한 욕실이 변화하고 있다. 언제부턴가 욕실은 씻기만 하는 공간이 아닌 개인적인 휴식까지 취할 수 있는 곳으로 '힐링 공간'으로 재탄생하고 있어서다.

특히 욕조를 개조하는 사람들은 늘어나고 있다. 22일 욕실과 주방 제품 분야 전문브랜드 콜러에 따르면 2018~2020년까지 욕조 판매량은 연평균 50% 이상 성장했다. 이는 아크릴 욕조와 주물(금속) 욕조의 판매량이다.

또한 콜러에서 오픈한 스마트스토어에서는 지난달 욕실 관련 인테리어 조회만 6,000건 이상을 기록했다. 스마트스토어는 셀프 인테리어에 관심이 높은 소비자들을 겨냥한 곳인데, 스스로 욕실 개조에 나선 이들이 많아졌다는 방증이다.

단 가격이 만만치 않다. 주로 현대식 욕실에 쓰이는 아크릴 욕조는 60~100만 원대이며, 주물 욕조는 400만원 대로 가격대가 높은 편이다. 인조석 재질을 사용한 리도캐스트 욕조는 400~700만 원대다.

사실 욕조는 역사적으로도 럭셔리의 상징이었다. 입욕 문화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욕조는 고대 로마시대에 최초로 개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격이 상당했기 때문에 상류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최초의 욕조는 1883년 '돼지 여물통'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욕조의 대중화가 시작된 시기다. 이 주물 욕조는 표면에 광이 나도록 에나멜 파우더 처리를 하고, 이를 지탱하는 네 개의 다리를 붙여 만들어졌다.

습기를 방지하고 갑작스러운 온도 변화를 견디기 위해 에나멜 처리를 한 것. 세계 최고급 호텔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욕조도 140여 년 전 기술과 노하우가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정원에 나만의 공간...'가든 오피스' 짓는 영국인들

영국에서는 정원에 자그마한 사무 공간을 짓는 일이 유행하고 있다. 역시 코로나19로 인한 재택근무의 연속성이 이어지면서 어떻게 하면 집에서도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느냐가 최대 과제가 된 것이다.

20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은 최소 5,000파운드(약 800만 원)를 들여 '가든 오피스'를 짓는 영국인들이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 왕립건축가협회(RIBA)에 따르면 코로나19 기간 동안 주택 소유자의 17%가 재택 근무를 위해 사무실 공간을 만들고 싶어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가정과 직장 생활을 분리시킬 수 있는 조용한 공간을 원하는 것인데, 부모의 업무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홈스쿨링, 개인 취미활동 등을 이곳에서 꿈꾸는 것이다.

실제로 한 주택개조 웹사이트(houzz.co.uk)에서는 지난해 여름까지 가든 오피스 검색이 72%를 차지했다. 홈웨어 브랜드 버트&메이(bertsbox.co.uk)도 지난해 초 첫번 째 봉쇄 조치가 취해진 이후 작은 오두막처럼 독립형 박스 사무실 설치 문의가 50% 증가했다고 밝혔다.

다양한 종류만큼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이글루 형태의 휴대용 돔 구조의 공간도 손쉽게 만들 수 있다. 대형 비닐하우스(PVC) 같은 공간은 온실이나 놀이공간, 야외활동 공간으로 활용 가능하다. 투명한 PVC 자체는 999파운드(약 160만 원)에 구입 가능하지만, 내부에 놓을 전기나 가구 등을 고려하면 3,000파운드(약 480만 원) 이상의 돈이 써야 한다.

조립식 구조로 제대로 설치할 경우 최소 5,000파운드가 든다. 여기에 견고한 바닥이나 전기 공사 등이 포함되면 추가 비용으로 1,000파운드가 들어간다.

유리벽면으로 꾸민 가든 오피스의 설치 가격은 더 높아진다. 박스 형태가 아닌 견고한 기술을 요하기 때문에 1만5,000파운드(약 2,400만 원) 이상은 들여야 한다.

무조건 돈을 들인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집의 측면 또는 후면에 있는 가든 오피스는 높이가 2.5m 미만이어야 하고, 집 주변 토지의 50% 이하만 차지해야 한다. 도로와 가깝게 짓지 않는 한 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다.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만큼 가든 오피스는 코로나19에 지친 이들에게 활력을 주고 있다. 가디언은 "주중에는 사무실, 주말에는 찻집이나 바(bar) 역할도 하며 가족과 친구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는 등 일과 즐거움을 모두 유지할 수 있다"고 전했다.

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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