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정상회담에서 '한미 미사일 지침'을 완전히 해제하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 정상이 최종 합의에 이른다면, 42년간 미사일 개발 과정에서 우리 발목을 잡았던 족쇄가 완전히 풀린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당장의 군사적 실익보다 미사일 주권 회복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더 크다고 평가했다.
한미 미사일 지침(RMGㆍRevised Missile Guideline)은 1978년 박정희 정부가 탄도미사일 '백곰' 개발에 성공하자, 존 위컴 주한미군사령관이 미사일 개발 중단을 권고하는 편지를 보내면서 시작했다. 이듬해인 1979년 10월, 미국으로부터 미사일 기술을 이전 받는 대신, 사거리를 180㎞로 제한하는 내용의 지침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북한의 핵ㆍ미사일 위협이 증가하면서 42년간 총 4차례 개정이 이뤄졌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1년 1월 최대사거리를 300㎞, 탄두 중량을 500㎏까지 늘렸고, 이명박 정부였던 2012년 10월에는 최대사거리를 800㎞로 늘리는 2차 개정이 있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두 차례 개정이 있었다. 2017년 11월에는 탄도미사일 사거리를 800㎞로 하되 탄두 중량을 완전히 없앴고, 지난해 7월에는 우주발사체에 대한 고체연료 사용 제한을 해제했다. 구조가 비교적 단순하고 상대적으로 신뢰도가 높다고 알려진 고체연료 사용이 가능해져, 민간 주도의 우주산업 개발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미 2012년 2차 개정과 2017년 3차 개정 당시 미사일 관련 장벽이 완전히 해소된 것으로 평가한다. 사거리가 800㎞면 남해안에서 북한의 모든 미사일 기지를 사정권에 둘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사거리와 탄두 중량은 한쪽이 늘어나면 다른 한쪽이 줄어드는 ‘트레이드 오프’(trade-off) 관계이기 때문에 2017년 탄두 중량 제한을 없앤 건, 사거리 제한도 사실상 풀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에 지침이 해제되면 그간 '트레이드 오프'로 우회적으로 피하던 규제를 완전히 풀었다는 데 상징적 의미를 둘 수 있다는 얘기다.
류성엽 21세기군사연구소 전문연구위원은 "그간 고체 기반의 중장거리미사일 기술을 보유할 순 있었지만 실전 배치를 위한 시험과 테스트에 일정 정도 제약이 있었는데 그런 것들이 풀리는 것"이라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나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개발도 대놓고 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사거리에 구애 받지 않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의 개발도 좀 더 유연해지는 효과를 볼 수 있다.
하지만 ICBM의 경우, 중국과 러시아 등 인접국을 자극할 우려가 있어 실제 개발 가능성은 크지 않다. ICBM이 위력을 가지려면, 재래식 탄두가 아닌 핵 탄두를 탑재해야 하는데, 핵 보유를 못하는 우리나라 입장에선 불가능하다. 그간 우리가 ICBM 개발에 주력하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때문에 이번 논의를 두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군사적 팽창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의도가 깔린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전문연구위원은 "이번에 지침이 완전히 풀리면 미국이 한국의 독자 핵개발을 의심했던 시기에 만든 '미사일 지침'이라는 구시대의 유물을 청산했다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며 "연합 전력인 한국의 군사력이 향상되는 측면에서 미국에 이익이 커지는 부분도 있다"고 분석했다.
워싱턴=공동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