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것은 교육이 정반대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학생들은 하루 15시간 이상을 학교와 학원에서, 자신들이 살아갈 미래에 필요하지 않은 지식을 배우기 위해 그리고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제3의 물결'과 '부의 미래'의 저자로 잘 알려진 고 앨빈 토플러 박사가 2007년 방한 시 한국사회를 진단하며 남긴 뼈아픈 지적이다.
한국에 애정과 관심이 많았던 앨빈 토플러는 20년 전인 2001년 김대중 정부의 의뢰로 '21세기 한국비전'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여기서도 그는 한국 교육이 입시 위주의 주입식 교육과 대량생산체제의 산물인 획일적 교육공장을 탈피해 다양성을 증진하고 학생들의 개성과 능동적 선택을 강화하는 다변화된 체제로 변모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2002년부터 시작된 자사고는 그의 조언을 받아들인 김대중 정부가 평준화 교육을 보완하고 교육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살리려는 취지로 도입한 것이다.
그러나 세계적인 미래학자의 신랄한 경고가 무색하게도, 지난 20년간의 크고 작은 입시제도 및 교육과정 개편 시도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오락가락 요란하게 변죽만 울렸을 뿐 입시지옥과 사교육비 문제는 날로 심화되고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에 따른 대학서열화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개선하지 못한 채, 정치적 의도를 수반한 정책들을 쏟아내며 중등교육 기관만 흔들어대니 학생과 학부모는 물론 교사와 학교의 혼란과 갈등만 가중되고 있다.
특히, 금번 정권이 대선 공약으로 내세워 추진 중인 '자사고·특목고 일괄 폐지'는 헌법에 보장된 학생·학부모의 교육선택권과 사립학교의 운영자율권을 침해하는 행위로 현재 헌법소원이 진행 중이며, 서울행정법원에서도 이미 수차례 서울시교육청의 자사고 지정취소는 위법이라고 판결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는 수억 원의 항소비용과 행정력을 낭비하며 시대에 역행하는 아집과 독선을 지속하고 있다.
다양한 분야의 우수 인재가 절실히 필요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민간 자본으로 운영되는 수월성 교육은 폐지 대상이 아니라 공교육이 벤치마킹할 수 있는 교육 자산이다. 일례로 설립자가 1,000억 원을 들여 세운 민족사관고등학교는 석·박사 수준의 교사들이 소수정예로 학생들을 지도하며, 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수업도 200여 개에 달하기 때문에 매년 140억 원가량의 예산이 소요된다. 세계의 명문 고교 모임인 'G20하이스쿨'에 가입된 국내 유일 학교로 외국에서도 수시로 견학을 올 만큼 우수한 학습 프로그램을 보유하고 있으며, 현 정부가 추진하려는 고교학점제와 교과교실제 역시 이미 오래전부터 시행해왔다.
공교육 정상화는 자사고·특목고를 없앤다고 해서 자동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교육소비자인 학생과 학부모의 수요에 맞게 민간자본이 공들여 만든 학습 프로그램을 공교육에 적용하고 전파할 수 있는 협생 방안을 찾아야 한다. 특히, 창의력과 비판적 사고력 배양을 위한 토론 및 논·서술식 수업이나 코로나 이후 더욱 시급해진 컴퓨팅 사고력 관련 수업의 경우, 이들 학교의 전문성과 노하우를 활용해 현직 교사들에 대한 대대적인 재교육을 추진하고 양질의 온라인 학습 콘텐츠를 공동개발하여 보급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반목과 분열이 아닌 협치와 상생을 통한 교육격차 해소 및 미래인재 양성을 위한 중장기적 교육개혁과 대안마련에 힘을 모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