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축구를 좋아하는 팬들은 근본이라는 단어를 자주 쓴다. 근본은 원래 '사물의 본질이나 바탕'이라는 뜻이지만, 인터넷에서 활용되는 근본의 의미는 사뭇 다르다. 예컨대 역사나 전통이 짧은 축구팀이 구단주의 막대한 자본력에 기대서 우승했을 때 또는 소속 선수들이 음주운전이나 폭행 등으로 물의를 빚었을 때, 그 팀은 "근본 없는 팀"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반면 역사가 짧고 우승 경험이 미천할지라도 감독과 선수들의 헌신으로 괄목할 성과를 거둔다면 근본 있는 팀으로 평가받는다.
근본의 정도, 즉 '근본력'을 가르는 기준은 우승 횟수나 인기가 아니다. 얼마나 내실을 갖추었는가, 얼마나 기본에 충실한가 하는 것들이다. 그래서 근본력을 기르려면 외형에 집착하기 이전에 탄탄한 기본기부터 갖추어야 한다.
만일 대한민국이 축구팀이라면 팬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까? 아마 근본 없는 팀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매일 같이 쏟아져 나오는 정치적 수사는 현란하고 눈에 보이는 퍼포먼스는 화려하다. K애국심은 대한민국이 세계가 주목하는 국가가 되었다며 엄지를 치켜세운다. 그런데 우리네 일상은 점점 팍팍해지고 미래는 더더욱 보이지 않는다. 번지르르한 말과 달리 내실이 없다. 근본 없는 팀의 전형이다.
장병 부실 급식만 해도 그렇다. 국방부는 채식주의자와 무슬림을 배려한답시고 비건 식단, 할랄 식단을 보급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이미 많은 장병이 밥에 된장국, 깍두기, 김, 방울토마토 몇 개로 구성된 채식 식단을 접하고 있다. 올해 국군 장병 급식비는 한 끼에 2,930원으로 초등학생 급식비(3768원)에도 한참 못 미친다. 정상적인 군대라면 다양성 존중도 중요하지만, 기본 식단부터 제대로 제공하는 게 먼저다.
영창제도 폐지도 다르지 않다. 진정 장병들의 인권을 챙기겠다면 훈련소에서 자살 막겠다며 화장실 가는데도 조를 이뤄 가게 하고, 코로나19 예방을 이유로 씻지도 못하게 하는 기본적인 인권 침해부터 살펴야 했다. 걸핏하면 불거지는 기본권 침해와 군 비위는 덮어 두고서 무슨 선진 병영을 만든단 말인가.
그럼 적폐청산은? 정부는 툭하면 "적폐청산으로 촛불정신 구현하겠다"는데 이젠 그 적폐가 무엇인지부터 다시 물어야 할 것 같다. LH 사태는 그 사달이 나고도 고작 15명 구속하는 데 그쳤고, 최근에는 관세평가분류원이나 한국전력 등 공공기관의 세종시 아파트 특별공급 논란마저 떠오르고 있다. 그뿐인가. 장관 하겠다는 이들은 하나같이 투기, 논문표절, 위장전입에 줄줄이 엮인 것도 모자라 도자기 밀수 이야기까지 나온다. 쏟아지는 의혹 속에서 대통령이 임기 초 약속한 공직사회의 투명성이나 5대 인사원칙 같은 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한국사회의 적폐를 청산하겠다는 말이 진심이라면 대통령이 집무실에 놓아야 하는 건 이제는 기억에서도 멀어진 일자리 상황판 같은 게 아니라 LH 사태 상황판이다.
지난 재·보궐 선거 이후 정치권은 청년들 마음 잡겠다며 온갖 청년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걸 놓치고 있다. 기본이 안 됐는데 화려한 수식어로 치장한들 청년들이 호응해줄 리 없다는 것을 말이다. 구질구질한 공약보다는 원칙에 입각하고 기본에 충실한 정치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