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관 찾은 김남조ㆍ김후란 시인 "연민의 감정·남편 기억 등 떠올라"

입력
2021.05.2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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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관에서 '미술과 문학이 만났을 때' 감상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수험생 필적 확인 문구로 등장했던, 김남조 시인의 시 ‘편지’의 첫 구절이다. '편지' 외에도 ‘겨울바다’ 등으로 잘 알려진 김남조 시인이 20일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을 찾았다. 그림을 그리는 문인과 글을 쓰는 화가, 그리고 이들 간의 관계를 집중 조명한 전시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를 관람하기 위해서다. 지난 2월 4일 개막한 이 전시는 코로나19 상황임에도 불구, 현재(5월 19일 기준)까지 6만565명이 관람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하루 평균 670명 이상이 다녀갔다.



아흔을 훌쩍 넘긴 김남조 시인은 2시간가량 이어진 관람에도 지친 기색 없이 김인혜 큐레이터의 설명에 집중했다. 고개를 끄덕이고, 손으로 턱을 괸 채 이따금씩 상념에 잠겼다. 특히 임화 등 월북해 사형을 당한 시인들의 이야기가 나올 땐 생각이 깊어지는 듯했다. “비극적 역사 속에서 선대 문인들이 어떻게 살았을지…” 그는 말 끝을 흐렸다.



전시를 보고 울컥했다는 김남조 시인은 일제강점기였던 1927년에 태어났다. 선대 문인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 그에게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나는 우리나라가 일본에 강제 점거되었던 치욕의 시절에 태어나 식민지의 아이로 자랐으며 고등학교 졸업 무렵에 해방을 맞이했습니다. 금지되었던 한국어와 문자와 한국인의 본이름을 찾게 된 감동의 시절이었으나, 얼마 후에 한국은 남과 북이 갈라져 대결하는 6·25전쟁에 다시 휩싸였습니다.”
윤범모 관장의 '시인과 화가' 중 김남조 시인 발언

전시 장소인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은 김남조 시인에게 개인적으로도 특별한 곳이다. 남편 김세중 전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이 일하던 장소이기 때문이다. 광화문광장의 이순신 동상을 제작한 조각가로도 유명한 김세중 전 관장은 1986년 미술관 과천관 개관 직전 과로와 지병으로 별세했다. 김 시인은 미술관에서 남편을 떠올렸다. “집에 돈을 안 가져다 주고 그래서 안 좋은 마음이 있었는데, 지나고 보니 내가 나쁜 아내였어. 된장찌개를 끓여놓고 기다리던 아내가 아니었지. 글을 쓴다고 바빴거든. 내 시간과 관심을 가족이 아닌 글에 쏟았어.”


전시 관람 자리엔 시인 김후란 문학의집 서울 이사장도 함께했다. 김후란 시인도 아흔을 바라보는 고령에도 관람에 열정적이었다. 그는 연신 ‘귀한 자료들이다’ ‘아름답다’라고 말했다. 화가 이중섭의 부인인 이남덕 여사가 이중섭에게 보낸 편지가 걸린 벽 앞에서는 한참을 서 있었다. “이남덕 여사와는 식사를 몇 번 한 적이 있어요. 반가워서 유심히 봤어요. 이름이 비슷하다고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고 대화하던 기억이 나요(김후란 시인의 본명은 김형덕이다).”

전시를 둘러본 김후란 시인은 뜻깊은 전시였다고 평가했다. “인간적 교감이 귀한 요즘, 그 어렵던 시절 미술과 문학이 서로 손 잡은 걸 보여주니 감격스럽네요. 좋은 전시, 감사합니다.”


채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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