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 참석차 미국을 방문하면서 SK이노베이션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찾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SK에 따르면, SK가 해외 생산 기지에서 현직 대통령을 맞이하는 건 이번이 처음인데요.
문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친 뒤 22일 조지아주로 이동해 SK의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을 찾습니다. 문 대통령의 이번 방미 마지막 일정인데요.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함께합니다. 최 회장은 현재 재계의 한 축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맡고 있죠.
대통령이 국내 기업의 해외 생산기지를 찾는 건 해당 기업에 힘을 실어주는 한편 해당 국가에는 이 기업과 공장을 한국 정부가 적극 뒷받침하고 있다는 사인을 보내려는 뜻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 대통령의 이번 방문을 두고서도 'K배터리'의 존재감을 높이려는 행보란 분석이 나옵니다. SK이노베이션과 LG에너지솔루션은 최근 2년 동안 미국에서 전기차 배터리 특허와 영업비밀 침해 분쟁을 벌였죠.
이 일에 미국 무역대표부(USTR)까지 나서면서 원만한 합의를 부추겼고, 양사는 4월 중순에 가까스로 합의를 봤습니다. 양사가 명운을 건 혈투를 벌이는 동안 중국 배터리 업체들은 반사이익을 노리며 성장했습니다. 한국 기업의 배터리 신뢰도도 떨어졌죠.
SK를 비롯한 국내 배터리 업체들이 심기일전해 위상을 회복해야 하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의 방문은 의미가 있습니다. 미국 내 K배터리의 신뢰도를 높이고자 대통령이 발 벗고 나서는 것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문 대통령에 앞서 역대 대통령들도 바쁜 해외 방문 중 시간을 쪼개 국내 기업들이 운영 중인 공장 등 생산 시설이나 건설 현장 등을 찾았습니다.
주로 국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기업을 방문했는데요. 삼성, LG, 현대차그룹의 해외 생산기지를 주로 찾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방문 국가 기업과의 합작 회사가 많았는데, 중국의 현대차공장은 대통령들이 자주 찾는 기업이 됐죠.
대통령의 해외 생산기지 방문은 바쁜 일정을 쪼개 잡는 만큼 그 기업에 대한 힘 실어주기로 해석돼 왔습니다. 해외에서 특정 산업 이슈가 불거질 때 해외 순방 일정이 겹치면 대통령이 해당 기업을 잊지 않고 찾는 이유입니다.
문 대통령은 앞서 2017년 12월 중국 국빈 방문 당시 충칭에 있는 현대차 제4공장을 방문했는데요. 중국의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에 따른 경제 보복으로 한동안 부진을 겪던 현대차가 분위기 반전을 꾀하는 시점이었죠.
문 대통령은 2019년 4월에는 투르크메니스탄 순방 당시 투르크멘바시에 위치한 키얀리 가스화학 플랜트를 찾았습니다. 현대엔지니어링·LG상사 컨소시엄 등 한국기업이 수주해 완공한 투르크메니스탄의 최초 가스화학 단지였죠.
해외 생산기지를 가장 많이 찾은 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2003년 7월 중국 국빈 방문 당시 베이징에 있는 '베이징현대차' 공장을 시찰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현대는 한국 경제를 일으켜 세웠다"며 "사람들에게 북경현대를 보라고 하겠다"고 치켜세웠는데요. 베이징현대차는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중국 정부의 비준을 받아 설립된 최초의 합작 자동차 기업입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듬해인 2004년 10월 인도에 국빈 방문했을 때 델리 남동쪽 노이다 지역에 위치한 LG전자 인도법인 현지 공장을 찾았습니다. 같은 해 10월에는 삼성전자 베트남 합작 공장을, 2005년 12월에는 말레이시아의 삼성SDI 현지 공장을 방문하여 직원들을 격려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대기업만 가지 않았는데요. 2004년 10월 베트남 국빈 방문 당시 베트남 하노이에 있는 의류제조업체 합작 법인인 한솔비나 공장을 방문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베트남에 한국 공단을 만들고 싶다. 한국 기업의 해외 이전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독려했어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1년 12월 헝가리를 국빈 방문했을 때 현지에 있는 삼성·LG전자를 동시에 방문했습니다. 이때 김 전 대통령의 방문 일정은 경제 외교를 중심으로 짜였는데요.
김 전 대통령은 당시 부다페스트에서 열렸던 한국상품종합전시회 개막식에 참석했고 LG전자관과 중소기업관을 시찰했습니다. 이튿날에는 야스페니사루시의 삼성전자 헝가리 공장을 찾아 직원들을 격려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당시 "미국 소비자들의 소비 능력이 한계에 온 것 같다. 이제는 유럽에 눈을 돌려야 한다"며 국내 기업의 유럽 시장 공략을 주문했는데요. 양국은 당시 유럽 시장 진출 시 헝가리와 공동 진출한다는 합의를 끌어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현대' 출신답게 현대차그룹을 자주 찾았습니다. 중국을 국빈 방문했던 2008년 5월 베이징현대차 제2공장을 찾았습니다. 베이징현대차는 2002년 제1공장을 세운 뒤 이 전 대통령 방문 한 달 전인 같은 해 4월 제2공장을 추가로 준공했습니다.
이 전 대통령은 중국 시장 점유율을 높여가는 현대차에 박수를 보내며 "언젠가 베이징현대차가 중국 내 외국차 회사 중 1등이 되면 좋겠다"고 치켜세웠죠.
이 전 대통령은 2010년 1월 인도를 국빈 방문했을 때 첸나이에 있는 현대차 현지 공장을 찾았습니다. 당시 현대차 현지 공장은 이 전 대통령의 국빈 방문 첫 번째 일정이었습니다.
1년 뒤인 2011년 10월 이 전 대통령은 당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함께 미국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인 미시간주 디트로이트를 찾았는데요. 양 정상은 디트로이트에 있는 제너럴모터스(GM) 공장을 방문했습니다. 미국 대통령이 외국 국가원수와 지방도시, 그것도 특정 기업을 방문한 건 이례적이었습니다.
양 정상이 디트로이트를 찾은 건 자동차 산업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상징으로 꼽혔기 때문이죠. 한미 FTA 효과를 홍보하기 위해 두 정상이 손을 잡은 겁니다.
이 전 대통령은 GM 방문 이후 현대모비스 디트로이트 공장을 방문했습니다. 특히 이 공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영업 실적이 크게 부진한 상황에서 한국 기업인 모비스가 인수를 한 첫 번째 생산 시설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3년 6월 중국 국빈 방문 당시 시안에 있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건설 현장을 찾았습니다. 우리 기업의 중국 서부 대개발 사업 참여와 중국 내수시장 진출 확대를 독려하기 위한 일정이었죠.
3년 뒤인 2016년 3월 국빈 방문차 중국을 다시 찾은 박 전 대통령은 베이징현대차 제3공장을 찾았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때 국내 기업들의 중국 서부지역 개발 사업 참여를 독려하며 현대차의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대통령의 해외 시찰 기업 중에는 대우도 빠지지 않는데요.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6년 11월 대우그룹의 오리온전기와 베트남 하넬의 합작법인인 오리온하넬 공장을 찾았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4년 12월 폴란드 바르샤바에 있는 대우전자 공장을 방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