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대법관 증원 검토’.
지난해 저런 기사를 접했을 땐 루스 긴즈버그 사후 대법관 지명을 강행한 도널드 트럼트에게 적잖이 짜증났나 보다 했다. 그런데 당선 뒤에도 대법관 증원, 연령제한 같은 개혁안을 공론화하는 걸 보고 괜스레 내 마음까지 웅혼해졌다.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삼권분립제도의 근간을 뒤흔드는 위헌적 좌파 포퓰리스트 빨갱이 정권’이 미국 땅에 등장했다는 신호탄이어서다.
바이든은 큰 기대를 받은 인물이 아니다. 트럼프 낙선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고른 최대공약수. 그래서 첫 임무는 ‘당선 그 자체’, 두 번째 임무는 ‘빠른 영면’이란 고약한 농담이 나왔다. '백인 남성 기득권' 따위는 ‘여성이자 유색인종’이라 두 겹으로 '정체성 정치'에 최적화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게 빨리 직을 넘기라는 얘기다.
그런데 바이든은 진짜 ‘제2의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되기로 결심한 것 같다. 대법원 개혁이 대표적이다. 알려졌다시피 루스벨트의 뉴딜은 ‘삽질’만이 아닌, 말 그대로 ‘새로운 계약’, 즉 노조 권리 강화 등 사회개혁조치를 뜻했다. 반대파는 역시나 ‘위헌’ ‘반시장’ ‘법치’를 내세웠고, 그 뒷배는 대법원이었다.
대법관이 종신이라 루스벨트는 대법관을 9명에서 15명으로 늘리려 했다. 뉴딜 찬성론자를 넣어 과반 승부를 노려볼 심산이었다. 이 계획은 뉴딜 찬성론자들에게까지 비판받았고 결국 포기했다. 동시에 루스벨트의 승리에서 시대의 흐름을 읽은 대법원도 뉴딜 뒷다리 잡기를 그만뒀다. 바이든과 루스벨트가 겹쳐 보이는 이유다.
바이든의 행보는 거침없다. 인프라, 일자리, 교육 등에다 6조 달러를 투자할 테니 부자 증세를 하자고 했다. '낙수효과' 따윈 없다 했고, “미국은 중산층이 만들었고 중산층은 노조가 만들었다”고 못 박았으며, 곧이어 노조 강화를 위해 부통령을 위원장으로 한 범정부 TF를 만들었다. 그뿐인가. 최저임금 인상안이 거부되자 연방정부 계약직의 최저임금이라도 시간당 10.95달러에서 15달러로 37%나 인상했다.
'나라가 남미 꼴 난다' 난리가 벌어져야 할 판인데, 영미권 언론들은 하나같이 ‘바이든-루스벨트 평행이론’ 기사, 담대한 ‘척’만 했던 버락 오바마보다 더 낫다는 분석 기사를 쏟아냈다.
‘정의’에 이어 ‘능력주의’를 따지고 든 정치학자 마이클 샌델은 학력주의 비판자답게 ‘여성, 흑인 같은 소수자라 해도 아이비리그 출신인 정치인’보다 ‘백인 남성이라 해도 평범한 주립대 출신인 바이든’이 훨씬 더 나을 수도 있다 한 적이 있다. 샌델의 예언이 맞아떨어지는 걸까.
물론 이제 시작이다. 바이든을 두고 ‘부자를 증오케 해 국민을 갈라치기하는 좌파’라 욕할 이들은 미국 땅에도 많다. 루스벨트는 ‘아침 입안, 점심 통과, 저녁 시행’이라 할 정도로 맹렬한 입법 속도전을 벌였으나, 바이든은 아직 행정명령 수준이다. 숱한 반대와 현실적 제약 등 장애도 많다.
결과가 무엇이든, 바이든을 보면 애써 선거한 맛이란 저런 건가 싶다. 그에 비하자면 ‘이남자’, ‘이여자’ 같은 말에 휘둘리는 한국 정치는 참 속 편해 보인다. 대선 시즌은 시즌인지 ‘별의 순간’ 같은 예쁜 포장지 소리가 요란하지만, 그거 대통령이나 그 주변 사람들에게나 해당한다는 걸 알 사람은 다 안다. 내년 우리 대선에 벌써 하품이 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