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쫀 이유를 아시겠죠? 아버지가 안 늙어요, 팔순인데..."

입력
2021.05.18 14:57
화가 주재환, 웹툰 작가 주호민의 부자전 
유쾌하면서도 날카로운 시선 똑닮아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서 8월 1일까지


‘우리 큰 아이가 웹툰을 그리는데...’

여든을 넘긴 화가에게 마흔을 넘긴 아들은 ‘아이’였다.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 어른이 됐다. 아버지가 그린 그림을 보며 자신의 의견을 건네던 소년은 이제 어엿한 웹툰 작가로 성장했다. 유명 웹툰 ‘신과 함께’의 작가 주호민(40)씨가 바로 그 ‘아이’다.

서울 중구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흥미로운 전시가 열리고 있다. 18일부터 개막한 ‘호민과 재환’이다. 호민은 주호민 작가의 이름, 재환은 그의 아버지 주재환(81) 화백의 이름이다. 말 그대로 아들과 아버지의 ‘콜라보’ 전시다.

전시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호민은 호민대로, 재환은 재환대로 각각의 강렬한 색을 드러낸다. 하지만 동시에 놀랍도록 닮은 모습을 보여준다. 부자(父子는) 유쾌하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을 작품을 통해 드러낸다. 재미있지만, 재미만 있지는 않은 작품들이다.

재환은 집게, 못 등 일상 사물을 재활용해 사회 풍자적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을 대거 선보였다. ‘훔친 수건’이라고 쓰인 수건을 캔버스에 걸고 ‘훔친 수건으로 훔친 딸을 혼냈더니 훔친 기억이 없다고 하네’라고 쓴 작품이 그 중 하나다. 이 수건은 실제 화백의 부인이 다니는 사우나에 있던 수건이었다. 수건이 계속 없어지자 사우나 측은 수건에 ‘훔친 수건’이라고 써서 사람들이 수건을 가져가지 못하게 묘안을 낸다. 주 화백은 이를 인상적으로 보고 훔친 수건을 작품화했다. 주재환 작가는 이에 대해 "청문회에서 불리한 질문이 나올 때 '기억에 없다'는 말을 많이들 하는데 이를 참고해서 만든 것"이라며 "재미있으면서도 씁쓸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호민은 웹툰을 통해 취업, 청년 백수, 육아, 노동, 주거 문제를 다뤘다. 전시는 취업난 속 젊은이의 삶을 그린 ‘무한동력’, 한국 신화를 바탕으로 전통적 저승관을 새롭게 그려낸 ‘신과 함께’ 등의 주요 부분을 소개한다.


또 하나 눈길이 가는 건 전시 포스터다. 포스터는 주재환 화백이 그린 주호민 작가, 주호민 작가가 그린 주재환 화백의 그림을 배경으로 한다. 노란색 얼굴에 선글라스를 씌우고 콘 아이스크림을 뒤집어 코와 입을 표현한 익살스러운 그림이 주재환 화백의 작품, 초록색 바탕에 만화처럼 그려놓은 게 주호민 작가의 작품이다. 두 사람 서로의 모습을 표현한건 이번이 처음이다. 작품은 전시장 입구에서 직접 볼 수 있다. “아버지가 저를 그려준 그림이 훨씬 젊죠? 제가 쫀 이유를 아시겠죠? 아버지가 안 늙어요, 팔순인데. 왜 저렇게 그리는 거야. 아이디어가 내가 더 없어 큰 일 났어(주호민 작가 유튜브 채널).”

두 부자는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또 받고 있다. 주재환 화백의 ‘몬드리안호텔(피에트 몬드리안의 추상화를 바탕으로 네모 칸에 그림을 그려 넣어 만화처럼 보이는 작품)’에서 주호민 작가의 웹툰이 떠오른다. 두 사람의 교류가 오랜 기간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생기는 전시다. 전시는 8월 1일까지.

채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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