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와 한국은행이 수개월째 "인플레이션은 일시적 현상"이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시장을 안심시키고 있지만,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물가 지표가 속속 발표되면서 '이번엔 진짜 인플레이션이 시작됐다'는 시장의 우려는 커지고 있다.
혼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지난해의 '초저유가'의 기저효과가 사라지는 올해 7, 8월이면 인플레이션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1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6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 거래일 대비 1.4% 오른 배럴당 66.27달러를 기록했다. 2019년 4월 기록했던 배럴당 66.30달러 이후 최고 높은 수치다.
지난해 코로나19 여파로 연초부터 급전직하하며 4월엔 초유의 '마이너스' 사태까지 기록했던 국제유가는 5월 이후 완만하지만 꾸준히 회복세를 다져왔다. 다만 전 세계적인 수요 급감이 직접 원인이 되면서 지난해엔 1년 내내 배럴당 20~40달러대를 넘지 않는 저유가 기조가 이어졌고, 자연스레 물가는 낮아졌다. 지난해 4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0.1% 오르는 데 그쳤고, 5월엔 -0.3%로 역성장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는 국제유가가 급격하게 오르기 시작하면서 물가도 덩달아 뛰고 있다. 지난달 우리나라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2.3%에 달해 시장 예상을 뛰어넘었다. 미국은 더 충격이 컸다. 미국의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4.2%를 기록하면서 2008년 이후 13년 만에 최대 증가폭을 신고했다. 이번에도 연준과 한은 등 통화당국에서는 "지난해 3~5월 물가가 낮았던 기저효과 때문"이라며 인플레이션 가능성을 일축했다.
문제는 이번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유가만 반영된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농축수산물은 전년 동기 대비 13.1%나 가격이 늘었고, 집세나 서비스물가도 꾸준히 상승폭을 더하고 있다. 전례 없는 수준으로 전 세계에 풀린 유동성이 물가를 전체적으로 밀어올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다만 지난해 국제유가가 정상 궤도를 되찾고 물가상승률도 어느 정도 회복되기 시작했던 여름부터는 당국이 일시적 인플레이션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기저효과'가 사라지는 만큼, 진짜 인플레이션 여부를 가려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지난해 3, 4월 마이너스를 기록했던 국제 유가는 지난해 7, 8월 40달러 선을 회복했다. 현재 대비 여전히 낮은 수준이지만 큰 폭의 기저효과는 사라지는 셈이다.
허진욱 삼성증권 연구원은 "6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이 발표되는 7월 이후 인플레이션 방향이 가늠될 것"이라며 "예상보다 수치가 높을 경우 연준이 빠르게 긴축에 들어갈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정부와 시장에서는 상반기 2%를 상회하는 물가상승률이 지속되다가도 하반기엔 전반적인 물가 상승폭이 제한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반면 하반기에도 인플레이션이 계속될 것이라는 의견도 여전히 나오고 있다. 김호정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최근 경제지표로 미뤄볼 때 향후에도 인플레이션 압력이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며 "미국에서 전례 없는 수준의 부양책이 시행되면서 수요의 회복 속도가 공급을 앞서나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