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과 일하다 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간혹 봅니다. 겨울 번식철에 가까워진 고라니 배설방식이 조금 달라지지요. 앞발로 낙엽 등을 파헤쳐 배설하되 콩자반 같은 똥을 몇 개만 뿌리고 갑니다. 여기저기에 말이죠. '여기는 내 땅이올시다' 주장하는 듯 보입니다. 포유류 삶의 방식은 대개 자신들의 감지능력이나 신체능력에 맞춰 소통하고 살아갑니다. 땅 안에서 주로 살아가는 두더지 시력은 매우 퇴화된 반면 후각과 진동감지 능력은 비약적입니다. 2019년 연구에 따르면 후각마저도 스테레오를 듣는 것처럼 활용한다니 대단하지요.
최근 박쥐의 자기장 감지 가능성에 관한 연구가 발표되었습니다. 지난 5월 발표한 독일의 한 연구에 따르면 박쥐의 장거리 이주에 중요한 환경신호를 눈의 각막을 통해 감지할 수 있다는 논문을 발표했지요. 각막은 눈의 바깥을 싸고 있는 부위로 안구를 보호하고 빛을 굴절시켜주는 투명한 막입니다. 사실 어두운 공간에서 활동하는 박쥐에게 눈이란 단순히 명암을 구분할 뿐, 대부분은 초음파를 통해 공간을 분석합니다. 이를 반향위치결정법이라 하는데 성대 근육을 떨어 초음파를 발생시키고 이 소리가 물체에 충돌하여 되돌아오는 음파를 분석하여 물체와의 거리나 크기, 방향을 알아차리죠. 따라서 눈은 근거리 활동에 별로 중요한 역할을 하지는 않습니다. 연구에 활용한 종은 나투시우스박쥐로서 서유럽에서 우랄산맥까지 광범위하게 분포하며 우리나라 박쥐들과는 다르게 장거리를 이주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연구진은 라트비아에서 포획한 박쥐들을 11㎞ 떨어진 벌판에 풀어주기 직전 한 집단의 박쥐군에 옥시부프로케인이라는 각막국소마취제를 양 눈에 투여하였고(18마리) 다른 한 집단에는 한쪽만 마취(19마리), 그리고 대조집단에는 생리식염수(20마리)를 투여했습니다. 풀어준 직후부터 각 박쥐 집단의 이동경로를 추적하였더니 생리식염수를 떨어뜨린 대조집단과 한쪽 안구만 마취한 박쥐집단은 곧바로 남쪽으로 방향을 잡아 이동을 시작하였으나 양쪽 모두 마취한 박쥐집단은 제멋대로 날아다니기 시작하였죠. 물론 마취효과가 사라진 이후 곧바로 남쪽으로 이주를 시작하였습니다. 각막마취 상태에서 시력을 통한 명암인지력 실험에서는 모두 같은 결과를 나타냈기에 적어도 방향성 감지에 각막이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셈이죠.
제6의 감각이라고 부를 만한 자기감각에 대한 연구는 사람에게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눈과 귀를 막은 피험자들과 파란색 빛을 보는 사람이 어떻게 자북방향을 찾는가에 대한 연구가 국내에서도 진행된 바 있습니다. 키 큰 풀과 눈으로 덮인 곳에서(오직 청각에만 의존해야 하는) 여우가 자북방향 340~40도 내에서 사냥 성공률은 72.5%였으나 동쪽이나 서쪽방향의 성공률은 18% 이하였다는 연구도 유명하지요. 체코의 25곳 어시장 물통에 담긴 이스라엘잉어(1만4,000마리)의 방향을 분석해보니 ‘자기장의 남북을 따라 정렬 균형을 잡는 것으로 보이며, 자기장 인지력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 합니다. 아직 우리 인류는 다른 동물들을 많이 아는 것 같으면서도 이들이 세상을 인지하는 방식조차도 미처 다 알고 있지는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