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화약고' 콜센터… "거리두기요? 턱스크에 다닥다닥 붙어 일해요"

입력
2021.05.1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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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갑질119, 코로나 후 노동환경 보고서 발표

①A씨가 근무하는 자동차보험사 콜센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콜센터 내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띄어앉기'를 실시했다. 하지만 월요일마다 띄어앉기는 유명무실해진다. 회의니 뭐니 하는 여러 이유로 재택근무하던 직원까지 모두 출근, 원래 자리에 앉아서다. 그것만이 아니다. A씨는 “띄어앉기하느라 남의 자리를 오가면 되레 더 위험할 수 있다고 회사에 건의했지만, 구청에서 조사 나올 수 있으니 안 된다고 했다"고 전했다.

②B씨는 신용카드사 콜센터에서 일한다. 이 회사 사무실 한쪽 자리는 텅텅 비어 있다. 멀쩡한 공간을 두고도 B씨와 동료들은 한데 다닥다닥 붙어 앉아 일한다. 면적당 사람 수를 따지면 여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빈 자리를 이용하자고 제안했으나 허사였다. B씨는 “저기는 다른 (하청) 업체 자리라서 쓰면 안 된다고, 본사 허락이 없으면 안 된다고 했다”며 “저희 업체에 할당된 자리 내에서 움직여야 된다고 한다”고 말했다.

③C씨가 일하는 항공사 콜센터 상담사들은 평소에는 마스크를 잘 쓰지 않는다. 쓰더라도 턱에 걸치는 일명 ‘턱스크’ 상태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유독 전 직원이 마스크를 잘 쓰는 날이 있다. 관할 고용노동청에서 방역점검하는 날이다. C씨는 “고용부에서 친절하게 항상 미리 점검을 온다고 말해주는 것 같더라”며 “점검 나오기 전에 항상 회사는 알고 있어서, 그런 날은 마스크를 다 쓰게 한다”고 귀띔했다.

노동인권단체 직장갑질119는 17일 이런 내용의 ‘코로나19가 콜센터 노동환경에 미친 영향 보고서'를 내놨다.

지난해 3월 서울 구로구 에이스손해보험 콜센터에서 약 170명의 직원이 코로나19에 집단감염되면서 콜센터는 '코로나19 화약고'로 꼽혔다. 비좁은 사무실 공간에서 비말 전파가 심한 상담 업무를 연속 몇 시간 동안 이어가는 일의 특성 때문이었다. 실제 콜센터에서의 코로나19 집단감염 사례는 그 이후로도 수시로 터져 나왔다.

이 때문에 고용노동부는 ‘코로나19 콜센터 예방·대응지침’을 지난해 3월, 8월, 11월 잇따라 내놔야 했다. 물리적 거리두기 준수, 작업장 분리하기, 재택근무와 휴가 적극 활용하기 등이 주요 내용이었다. 이런 조치들이 실제 현장에서 잘 지켜지는지, 직장갑질119는 노무사 등이 포함된 연구진을 꾸려 은행, 카드, 항공사, 공단 등 각 영역의 콜센터 상담사 13명을 대상으로 심층 면접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고용부의 지침이 유명무실하다는 사례들이 쏟아진 것이다.

이는 지난해 12월 콜센터 상담사 3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와도 이어진다. 당시 조사에서도 고용부 지침 이후 동료와의 간격이 1m 이상 늘었다는 응답은 27.1%에 그쳤다. 46.5%는 연차휴가를 자유롭게 쓰지 못한다고 응답했고, 절반 이상(59.1%)은 휴게공간이 따로 없다고 대답했다.

또 이번에 심층면접 대상자가 근무하는 콜센터 13곳 중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실제 재택근무를 시행한 사업장은 3곳에 그쳤다. 재택근무를 시행한 사업장 중에서도 일부는 근태 확인을 이유로 수시로 사진을 찍어 보내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직장갑질119는 보고서에서 “정부가 콜센터 사업장 예방 지침을 내놨지만 현장에서는 효과적으로 시행되고 있지 않으며, 노동환경은 개선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청환 기자